나는 국과 찌개를 좋아한다. 타고나기를 화(火)의 기운이 몸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소고기뭇국, 곰탕, 설렁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부대찌개, 시레기국, 호박 고추장 찌개 등 건더기와 국물이 어우러진 담백하면서도 깊은 전통의 맛을 나는 오래도록 즐겼다. 어릴 때는 건더기를 통째로 남긴 채 국물만 처먹는다고 어머니한테 자주 혼났더랬다.
내가 유일하게 국물보다 건더기를 좋아했던 음식이 있다. 수제비다. 비 오는 날이면 자주 밖을 내다보시던 어머니는 "오늘은 글렀네"하시며 혀를 차다가 찬장에서 오래 된 밀가루를 꺼내어 수제비 반죽을 하셨다. 남의 밭일을 하며 품삯을 벌어야 했던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을 몹시 싫어하셨다. 하루를 공치면 그만큼 피곤한 하루가 어김없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휴일 없이 이어지는 밭일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술값으로 거덜내는 살림살이가 그만큼 팍팍해졌던 탓이었다.
어머니의 손에서 찰지게 단단해지는 수제비 반죽이 나는 신기했다. "칼국수 해주랴?" "아뇨. 저는 수제비가 좋아요." 딱히 이유를 댈 수 없지만 그저 좋은 것을 우리는 취향이라고 부른다. 나는 잔치국수에 물려서 그런지 칼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취향은 수제비에 꽂혀 있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툭툭 벗꽃처럼 떨어지는 수제비가 그저 좋았다. 국자로 건져저 사발에 담겨도 쫄깃한 식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수제비의 맛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나는 수제비라고 즉각 대답한다. 김장 김치 하나만 있어도 점심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공부하다 출출해진 늦은 밤에도 솥에 남은 불어터진 수제비를 맛나게도 먹어 치웠더랬다. 지금도 자주 그 수제비의 맛이 그립다. 음식에는 추억이 담긴다.
대운이 바뀌면서 내 몸의 화기가 빠져 나갔다. 나의 열정도, 분노도, 다혈질의 기질도, 마음과 달리 속 좁게 상대를 아프게 했던 말에 담긴 괜한 오기도 잦아들자 나는 국과 찌개가 당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신기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기의 작용에 눈을 뜬지 오래인 내 입장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국과 찌개, 탕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음식에는 몸의 변화가 담긴다.
다산은 편지를 통해 자식들에게 일렀다. "음식은 굶주리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다산은 입는 것, 먹는 것, 재물을 부질없게 생각했다. "옷은 입다 보면 낡기 마련이고, 음식은 먹으면 썩으며, 재물은 자손에게 남겨도 결국 없어지거나 흩어진다. 허나 가난한 친척이나 벗에게 나누어 주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다산은 말했다. 유배지에서 무너지는 몸을 부여잡고 다산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대부분의 끼니를 홀로 때웠을 그에게 식사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살아 있으려는 고집 같은 것이었으리라. 음식에는 고독한 의지가 담긴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부를 판사이자 미식가로 살다 간 프랑스인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은 자신의 책 <<미식 예찬>>에서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식사의 쾌락은 다른 모든 쾌락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와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람의 말은 시대 안에서 잉태된다. 그의 시간은 시대와 괴리되었음이 분명하다. 음식에는 사람의 시선이 담긴다. 그는 나와 다산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지구의 한 시대에 유배되었다. 한쪽에서 날마다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들이 있는 유형지의 풍경. 비록 다산처럼 살지는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소식가로 남지 않을 수 없다. 음식에는 타인의 얼굴이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