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번역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은 본래 '폴리스 안에 거주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문명(civilization)은 도시를 뜻하는 라틴어 '키비타스(civitas)'에서 유래한다. 즉, 인간이란 동물은 동물이되 높은 지능을 사용해 도시라는 문명화된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정치적 행위를 하도록 숙명 지워진 존재자인 셈이다.
인간의 역사가 누적되는 동안 국가는 인간 공동체의 대표적 단위가 되었다. 그것은 개인에게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강제하고 법과 각종 제도로 개인을 통제한다. 그 방법과 절차의 형식과 내용에 따라 정치 체제의 차이가 생길 뿐, 통제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그 사실은 통치라는 단어에 잘 반영되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정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국가 권력의 획득과 유지, 행사'라는 표현은 정치의 본질이 권력 쟁취에 있음을 말한다. 유지와 행사는 권력을 손에 쥔 다음의 일일 뿐이다.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영위' 이하는 정치 행위의 당위적 내용이지만, 권력자와 권력 집단의 성격에 따라 그것은 얼마든지 왜곡된다. 정치에 있어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적 본질은 권력 투쟁, 이것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다고 평가 받는 페리클레스는 실권을 가진 군사령관으로 15회 연임했으며, 아테네는 다른 폴리스들을 핍박했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노예 노동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테네의 독선적 번영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땅을 고르게 분배하여 나눠 갖고, 공교육을 실시했으며, 여성을 중시하고, 소박한 공동 생활을 영위한 평등 공동체 스파르타를 소크라테스는 이상적 공동체로 여긴 바 있다. 자유, 공화, 민주정의를 기치로 내세운 한국의 친일 군사 독재 세력은 공안 통치로 국민을 압살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떠든 경제 부흥은 노예처럼 극한 노동에 시달리고 베트남 전장에서 죽어 간 국민의 땀과 피 덕분이었다. 도시와 자본 중심의 성장을 강요한 국가 주도 경제는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영원한 권력을 꿈꾸며 쌓아 올린 그들의 독재의 성은 민주주의의 도도한 물결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물살에 휩쓸려 수장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후로도 자주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며 부활했고,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들에겐 돈과 펜과 거침없는 욕망과 자신들을 추종하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온갖 부정과 불법으로 축재하고 권력을 사유화하여 단죄 받더라도 언제고 권력을 다시 거머쥘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들은 망설이지 않는다. 수감되도 기껏해야 몇 년, 그것도 사면으로 풀려나는 현실 앞에서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파르타에 패한 아테네가 그 허울 좋은 민주정을 흔든다는 명목에 불경죄를 덧씌워 소크라테스를 처형했듯, 그들은 시민의 의식을 일깨워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 진영의 정치 지도자를 죽이는 데 혈안일 뿐이다.
국민과의 약속 운운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사수를 외치는 야당 의원들이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정치의 본질을 모르는 한심한 자들이다. 총선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허점 투성이의 선거제를 악용하지 않았다는 명분에 자위하려는 이들은 이 참에 정치판을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력 획득에 초연한 체하는 자들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다. 작금의 현실에서 의회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 없는 나태한 자들이며,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려면 사생결단의 자세로 이기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대의를 저버린 배신자들이다. 자신들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망상을 위해 국민들의 표를 사장시키려는 철면피들이다. 국민은 표 던지는 기계가 아니다. 국민의 표는 망해 가는 나라를 구원하려는 일념으로 역사의 반동 세력을 향해 날아가는 비수가 되어야 마땅하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는 지혜의 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추앙 받는다. 아레스가 힘만 믿고 망동하는 항우를 닮았다면 아테나는 유방을 연상시킨다. 선거는 전쟁이다. 오직 승리를 위해 지혜를 짜내야 한다. 아테나 옆에는 승리의 신 니케가 시중들고 있다. 패배를 자초하는 주장을 일삼는 자들은 적을 이롭게 하는 반역자들에 불과하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이상적인 제도를 만들고 싶은가? 헛소리 작작하고 승리한 다음에 하라.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나라도 무너진다. 깨어 있는 이 시대의 시민들을 기계로 만들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