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에 접어든 D는 지난 날에 대한 후회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삶을 실패로 점철된 한심한 인생으로 규정했다. 가족에게서 버림 받고, 무엇인가를 도모할 밑천과 실력도 없이 하루하루를 축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내 안에서 신물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는 그림책처럼 아련하고, 현재는 철학책처럼 버거우며, 미래는 소설책처럼 모호한 법이다. 빛 바랜 이미지들의 파편들을 향해 뒤돌아보면 애틋한 그리움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알록달록 무지개처럼 화려한 이야기들을 향해 눈을 감으면 몽환적인 성취감이 뭉게뭉게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돌리지도 말고 눈을 감지도 말아야 한다. 까마득한 높이로 서 있는 암벽 정상을 향해 다시 손을 뻗을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몸을 단련해야 한다. '나'의 의지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몸이다. 몸은 '나'로 하여금 이 세계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유일한 실체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없지만 그 하루하루가 충실히 모일 때 반드시 달라지고야 만다는 진리를 몸은 펼쳐 보인다. 새아침을 맞으면 밤사이 고인 노폐물을 쏟아 버리고 스트레칭부터 시작하라. 의식처럼. 오래된 기계처럼 뻣뻣하게 굳은 몸이 풀리면서 마음도 유연해진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동일한 의식을 반복하라. 하루의 일부분을 반드시 운동에 할애하라. 운동에 거창한 시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몸이 곧 도구다. 몸으로 몸을 길들여라. 길들여지기 시작한 몸은 점차 정신의 충복이 되어 간다.
그 다음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공부는 책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책으로 터득할 수 없는 지식과 지혜가 존재한다. 그것을 혼자 깨우치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현자를 찾아 알아보는 것도 공부다. 어떤 방식이든 하루의 일정 부분을 공부에 바쳐야 한다. 심신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전까지 모호한 미래는 선명해지지 않는다.
원하는 미래로 건너가는 일은 엘 카피탄을 프리 솔로로 오르는 것과 같다. 안전 장치는 없다. 옆에서 도와주는 이도 없다. 기억하라. 인생은 무상하기 이전에 비정하다. 암벽 아래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 당신을 위해 준비된 줄과 헬리콥터는 없다. 그것은 다른 자들의 것이다.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어 오르거나 손을 놓아 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다. 암벽을 읽는 지혜로운 눈이 있어야 하고, 버틸 수 있는 체력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 있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먹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몸 아니면 머리를 쓴다. 몸을 쓰든 머리를 쓰든 일은 일일 뿐이다. "노동에 대한 찬사는 자기 기만"이라는 니체의 말을 기억하라.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노동하고 있다는 진실을 직시하라. 당신이라는 주체의 독립을 원하는 한 먹고 살아 있기 위해 노동하라. 그것은 심신이 자라나는 동안 당신을 버티게 해준다. 그 사이 몸과 정신이 준비되면 당신의 눈에는 암벽에 새겨져 있던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을 보는 사람은 소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당신이 그 소수에 포함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10년. 나는 D에게 말했다. 10년 후에도 당신은 겨우 60대 후반일 뿐이라고. 건강하고 지혜로운 심신으로 즐기기에 당신의 삶은 충분히 길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당신의 현재는 철학책처럼 의미 있게 될 것이라고. 당신의 뒤로 줄을 내려 주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내가 만난 나의 길처럼, 그가 그의 길을 볼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