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by 오종호

코로나19로 세상이 얼어붙고 있을 때 L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의 본능은 그에게 속삭였다. "이건 기회야." 사스나 메르스처럼 코로나19도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다섯 개의 직영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투자를 유치해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갔다. 소나기가 그치면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을 전개할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바닥'이라는 투자의 격언을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용기와 혜안에 가슴이 뿌뜻해졌다.


소나기는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팬데믹이라는 눈 폭풍으로 변해 그의 매장들을 강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의 집합금지명령으로 인해 고객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매상은 바닥을 쳤다. 버티기 전략이라는 L의 두 번째 선택도 실패로 돌아갔다. 임금과 임대료는 밀렸고, 권리금을 내고 들어올 임차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이루어 온 그의 성취는 단 1년 만에 무너져 내렸고, 그는 빚더미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L의 요리 실력과 장사 수완을 칭찬하던 투자자들은 악마로 변신해 그를 몰아세웠다.


세상에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는 동안 살아남은 수많은 말이 있다. 그것은 옛 사람들의 지혜라는 표현으로 흔히 포장된다. 내가 보기에 그것에는 그렇게 불릴만한 근거가 없다. 동시대를 살다가 먼저 죽은 사람들에게 죽어 마땅한 이유가 없듯이, 죽은 말들에게도 죽어 마땅한 원인 따위는 없다. 그저 사람도 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뿐이고, 우리에게는 드러난 현상만이 보일 뿐이다. 죽지 않고 생존한 말들 중 '누구에게나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L도 이 말을 신봉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자기 인생의 두 번째 기회라고 확신했다. 기회의 꼬리가 손가락 사이를 바람처럼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는 그것의 머리를 움켜쥐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손을 마구 빌렸다.


사람들이 기회라고 여기는 순간의 감정은 대부분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 기회는 오는 것이 아니다. 오는 것은 운이다. 길운과 흉운은 조수처럼 반복적으로 오간다. 길운을 앞두고 도모하는 일은 성공 확률이 높다. 그것은 복을 부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흉운임을 모르고 무리하게 벌이는 일은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그간 받은 복을 일거에 날리는 자충수가 된다. 바다로 나아가려면 밀물에 맞춰 배를 띄워야 하듯 성취를 거두고자 하면 길운을 타야 한다. 길운을 포착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까닭이다.


길운을 읽고 그때에 맞춰 일을 추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실력을 기르며 준비하는 일이야 말로 기회를 창출하는 지혜로움이다. 길운은 결코 태풍처럼 오지 않는다. 미풍처럼 온다. 봄 농사를 시작하려면 겨울을 인내해야 하고, 가을걷이를 기대하려면 땡볕 아래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여름날들이 있어야 한다. 길운은 계절처럼 흐른다. 순리에 맞게 일을 준비하고 추진한 사람은 수확할 것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 일이 막히는 때가 온다. 길운이 떠날 때가 되면 확장을 멈추고 수세로 전환해야 한다.


흉운은 계절이 일시적으로 역행하는 것과 같다. 여름에 맞춰 봄 논에 모를 심은 농부에게 겨울이 닥치는 것과 같다. 욕심을 부린들 겨울 논에서 벼를 자라게 할 수는 없다. 논바닥에 보일러를 깔고 비닐 하우스로 덮은들 뜨거운 햇빛의 도움 없이 알은 차지 않는다. 사람의 일의 성패에 있어서 외부 환경의 중요성이 이와 같다. 봄 다음에 갑작스레 찾아온 겨울에 맞서지 말아야 한다. 이상 겨울이 끝나고 계절의 방향이 순행을 되찾은 후 행동해도 늦지 않다.


충동을 이기는 힘을 길러야 한다. 평소 자주 감정이 격해지거나 화를 다스리기 어렵다면 흉운의 유혹에 휩쓸리기 쉽다. 나 역시 그러한 성정 탓에 오랫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혜의 학문을 익혀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평안을 획득한 후에 내면을 뒤흔들던 회오리바람을 떠나 보낼 수 있었다. 가슴속에 소용돌이가 있는 한 충동에 이끌려 태풍을 만들고 있는 바다로의 출항을 멈추기 어렵다.


L에게는 그가 간절히 바라는 세 번째 기회가 올 수 있을까? 나는 그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는 겨울을 후회와 불평으로 채웠고, 다시 봄부터 시작하려는 대신 곧장 가을을 맞을 궁리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주역>> '산수몽괘'의 <대상전>에 들어 있는 '과행(果行)'의 의미를 들려 주었다. "나무가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은 과정을 건너뛰지 않고 충실히 밟았다는 증거이다. 예전처럼 다시 처음부터 순리대로 묵묵히, 멈추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라." 시작하는 법을 잊은 L의 귀에 담기는 얘기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