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鈞
명실미휴이희노위용 역인시야 시이성인화지이시비이휴호천균
-명분과 실상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기쁨과 노여움이 교차하는 것 역시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옳고 그름에 조화롭게 응하여 하늘의 균형 안에서 편히 머문다. - 제물론(齊物論)
분별심이 남아 있는 한 도에 이를 수 없습니다. 노자와 장자의 견해가 일치합니다.
인간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의 차이가 먼저 들어오지요. 선악, 미추, 빈부, 다소, 장단, 경중, 손익 등 인간의 잣대는 다름을 두루 나누는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해 왔다는 사실이지요. 종교와 이념 같은 거창한 기치 아래에 깔려 있는 인간의 위선과 탐욕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실체를 꿰뚫어볼 수 있게 해주는 척도와 같으니까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장자는 '조삼모사' 얘기를 꺼냅니다. <<열자>>에도 실려 있는 이 우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됩니다. 소통의 관점으로 보는 철학자도 있고,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자가 이 우화를 사용한 취지는 명확합니다. 바로 위 구절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본질은 같은데 굳이 분별하여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본성입니다. 악랄한 위정자들은 그것을 교묘히 활용하여 반대 세력을 억누르고 우호 세력의 환심을 사는 정책들을 구사해 왔지요.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이 누군가에 의해 조장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질문하는 능력만 있어도 역사의 후퇴는 미연에 방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장자의 말대로 도에 통달하여 위에서 조망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니까요.
'4+3'이든 '3+4'든 7이라는 결과는 다를 바 없지만 일단 눈앞의 이익을 선호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누구나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로또만 해도 예외 없이 돌아오는 토요일에 당첨되기를 바라지요. '10년 후나 20년 후에 당첨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욕망의 조급증'을 버려야 합니다. 욕망의 자리에 목적을 배치하고 꾸준히 노력하며 성실히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