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大道不稱 大辯不言... 知止其所不知 至矣... 孰知不言之辯 不道之道 若有能知 此之謂天府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 而不知其所由來
부대도불칭 대변불언... 지지기소부지 지의... 숙지불언지변 부도지도 약유능지 차지위천부 주언이불만 작언이불갈 이부지기소유래
-무릇 대도는 이름 붙일 수 없고, 큰 변론은 말할 수 없다...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앎을 그친다면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누가 말할 수 없는 변론과 이름 붙일 수 없는 도를 알겠는가? 만일 알 수 있다면 이를 하늘의 창고라 부를 만하다. 아무리 부어도 가득 차지 않고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데, 그 유래조차 알 수 없다. - 제물론(齊物論)
세계에 대한 회의와 존재론적 사유는 철학의 숙명과 같지요. 노자는 <<도덕경>>에서 세계의 근원에 대한 극강의 사유를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현대 과학적 상식을 갖지 못한 그의 언어는 일견 난해하게 느껴지지만 그의 사유를 성실히 따라가면 그가 우리에게 들려 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에게 존재했던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와 깊이 교감하는 동안 그의 사유가 도달했던 드높은 지점에 감탄하게 됩니다.
위 구절은 <<도덕경>>의 한 대목을 읽는 듯 낯익습니다. 인간의 언어의 한계는 곧 사유의 한계로 이어지지요. 분별심을 일으키는 인간 언어의 태생적 구조로 인해 인간은 분별심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만물과 현상을 상대적 관계로 인식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을 통일적으로 통찰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노자와 장자는 인간에게 포착되지 않는 도의 존재를 파악했고, 그것에 의해 세상이 주재되고 있다는 진리를 명확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그것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규정하는 도는 이미 도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의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순간 인간에게는 어떤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알 수 없는 지점에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의 코 앞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다시 훌쩍 멀어지고 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진리를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시작하고 마감하는 인생은 덧없습니다. 누구도 그 무상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소수만이 예외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인간은 피투된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목적이 주어져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한 선 굵은 실천을 지속하는 소수의 인간만이 하늘의 도에 가까운 삶을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언어를 넘어 자신만의 언어를 갖는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영성이 열리지 않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인간이 살다 가는 세계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알 수 있지요. 정신을 높은 수준으로 밀어 올릴 때 그 폐쇄성에 담긴 의도성을 보게 됩니다. 닫힌 세계 안의 무상한 인생을 열린 세계의 위치에서 관조할 수 있게 될 때, 인생은 '소요(逍遙)'의 대상이 됩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자유로운 노님에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평가 따위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