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by 오종호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以有涯隨無涯 殆已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이유애수무애 태이


-우리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좇는 것은 위태로울 뿐이다. - 양생주(養生主)



제 3편 <양생주>를 시작하며 장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장자는 선을 행하며 명성을 가까이하지 말고, 악을 행하며 형벌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 중간을 기준으로 살면 신체를 보존하고 본성을 지키며, 부모를 공양하고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합니다.


노자와 장자를 읽으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지식에 대한 그들의 비판입니다. 그들이 비판으로 삼은 지식은 유가를 중심으로 한 당대의 주류 학문이었습니다. 도가의 언어로는 '유위(有爲)'의 학문인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위 구절을 배움의 무익함을 강조하는 반지성주의 정도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장자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억지로 세속적 성취를 거두고자 하늘이 내려 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삶을 살지 말고 무위의 삶을 살라고 얘기합니다. 무위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인위적인 학문은 방해가 될 뿐이니 그것에서 멀어져 중도의 삶을 사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자는 사실 말하고 있습니다. 유한한 인생임에도 무한한 앎의 길에 뛰어들어 도(道)를 깨닫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위태로운 길이라도 충분히 걸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류 문명은 도구적 지식 기반 위에서 건설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찬란해 보이지만 인간도, 다른 생명체들도, 지구 자체도 그것으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고 있지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용한 듯 느껴지는 목적적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물질 위에 서 있는 인류의 생활 양식은 도구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지요. 생존의 위험에 질식되어 지혜의 영역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한, 삶의 안정성이 지속적으로 위협 받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