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정해우(庖丁解牛)'는 <<장자>>에서도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지요. 포정은 신들린 듯한 자신의 발골 솜씨의 근원을 도(道)라고 얘기합니다. 장인의 기술을 뛰어넘은 경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가 19년 동안이나 사용한 칼은 숯돌로 막 간듯한 예리함이 살아 있습니다.
그의 긴 이야기를 들은 문혜군은 '양생(養生)'을 터득했다고 말합니다. '삶을 기르는 것'이니 본래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인생을 진정 의미 있게 사는 법', '인생에서 진정 추구해야 할 가치' 정도로 의역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포정이 보여 준 것은 도를 깨달은 사람의 '무위의 도'에 다름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한 가지 일을 오래하면 전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득도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아닐 테지요.
장자가 굳이 백정과 임금을 등장시켜 우화를 지은 것은 도에 이르는 길이란 자신의 생활과 일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을 하려는 의도로 봐야 합니다. 그 길을 발견하고 그 끝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구나 득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력이나 학위, 재물적 성취 등을 내세워 고수 흉내를 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행태이지요. 자기 안에 득도의 길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무대 위에 오른 이름난 사람들의 말과 글에 자극 받으며 휘둘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외부로 향한 시선을 거두어 자기 내면을 진지하게 응시해야 합니다.
현대인이 깨달아야 할 사항은 사실상 위대한 성인들이 모두 밝혀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경험과 공부의 과정 속에서 그것의 정수와 고유한 방식으로 공명하는 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 누구도 '나' 대신 '나'를 '나'의 도로 이끌어 줄 수 없습니다. 물론 깨달은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