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by 오종호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帝之縣解

안시이처순 애락불능입야 고자위시제지현해


-주어진 시간 동안 편히 지내다 순리를 따라 떠나면 슬픔도 기쁨도 끼어들지 못한다. 옛 사람들은 이를 하늘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불렀다. - 양생주(養生主)



노담(노자)이 죽자 조문을 간 진일이 곡을 딱 세 번만 하고 나옵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제자 하나가 친구의 상에 이렇게 조문해도 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상갓집에서 제 자식의 죽음에 곡하는 듯한 노인과 제 모친의 죽음에 곡하는 듯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며 진일은 노자가 생전에 사람들과 넘칠 정도의 정을 쌓았음을 알았습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노자는 그저 때를 만나 태어났다가 때가 되어 갈 뿐이라고.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 위의 구절입니다.


인간의 생존욕은 재물욕과 명예욕으로 이어집니다. 살긴 살되 더 멋있게, 더 편안하게,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살아 생전의 욕망으로도 모자라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주기를 바라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생존욕은 곧 인정 욕구 그 자체이지요. 인간은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수많은 것을 먹고 소비하며 살았으면 죽어서 나무 한 그루의 거름으로 담담히 돌아갈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백자처럼 질박한 삶을 살다가 소박하게 맞이할 때 죽음은 아름답습니다. 우리 사회에 슬픈 죽음이 난무하는 까닭은 사회가 구성원의 삶과 죽음에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나라 자본주의의 모습은 케이지에 헤비급 선수와 라이트급 선수를 함께 넣고 최선을 다해 자유롭게 싸우라고 독려하는 것과 같습니다. 싸워 이길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줬으니 된 것 아니냐고 말하는 꼴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공공선을 운운하는 작금의 정부는 일방적으로 헤비급 선수에게 유리한 규칙을 적용하는 악랄한 심판에 다름 아니지요.


그럼에도 인간은 살아야 합니다. 살긴 살되 잘 살아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인간답게 잘 살아야 합니다. 시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큰 꿈을 가슴에 품고 묵묵히 나아가되 그것이 동시대의 타인들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성격의 것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타인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은 결과로 획득한 재물과 권력을 향유하는 자들이 엄히 단죄 받는 사회를 만들 때, 사회 구성원의 꿈은 점점 선해질 것이며, 삶은 담백해지고, 죽음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안시처순'을 일상의 철학 차원으로 수용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를 즐기며 순리대로 살면 슬픔도 기쁨도 끼어들지 못한다.' 우리가 직접 허락하지 않는 한 우리의 영혼은 상황에 속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노력해 왔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은 외부의 충격과 그로 인한 고난이 닥쳐도 영혼이 해방되어 있는 한, 그 안에서 신음하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