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가님, 이 원고는 어렵겠습니다.”
왼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알 없는 빨간색 안경테의 오른쪽 창 위아래를 잡고 살짝 들어올리며 도서출판 북티잔 편집장은 특유의 냉소적인 눈빛을 보냈다. 고리타분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대해 그녀가 흔히 짓는 표정의 첫 단계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오직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원고를 만났을 때만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이유가 뭡니까?”
민성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의 시선에 응수하며 느리게 말했다. 편집장은 좌우로 고개를 몇 번 흔들고 나서 왼손 검지 손가락으로 코 옆을 두 번 긁은 후 허공에 떠 있는 원고를 집어 버추얼 책상 서랍에 넣으며 민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조작가님도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지금이 어떤 시국입니까? 세상이 이런 판에 사람들의 실종을 다룬 책이라뇨. 실종, 행방불명, 이런 단어는 사실상 금지어 아닙니까? 조작가님이 저희 출판사에 기여해 주신 바를 모르지 않습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의리도 지켜 주셨구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출판시장이 어땠는지 모르시지 않지 않습니까? 종이책이 금지된 후 상상 초월의 AR북들이 출판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웠던 좋은 시절이 더 이상 아닙니다. 사람들이 불안해서 책을 읽지 않아요. 저희 출판사도 이전에 벌었던 것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그녀의 말은 일면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 10여년 전,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하면서 전자책 시장에 한동안 호경기가 있었다. 제작 비용과 재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소규모 출판사들은 달라진 환경에 의욕적으로 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허파>의 전 세계적 흥행이 불러온 기적적인 공감대도 한몫 했다. 읽지도 않는 책과 신문을 위해 더 이상 나무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는 참혹한 현실을 영화는 보여주었다. 지구의 숲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돈 많은 대형 출판사들이 텍스트 위주의 전자책을 증강현실 기술과 접목시켜 중독성 높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제작하기 시작한 뒤로 상황은 급전했다. AR북의 출판은 종이책 시절보다 초기 제작비용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 부담은 마케팅력이 떨어지는 출판사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출판사는 AR북 시장을 선도하는 초대형 출판사였다. 돈 문제는 엄살이었다.
“편집장님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잘 알겠습니다. 바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조작가님의 글이야 평론가들도 최고라고 인정하는 것인데 시장상황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민성은 편집장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말은 대중성 없는 작가인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는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민성은 가슴이 아파왔다. 돈 안 되는 무거운 주제의 소설에만 집착하는 현실감각 제로의 삼류소설가. 그것이 그녀가 그의 곁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재혼, 늦었지만 축하해, 은희야. 이제 여긴 오지 않을게.”
은희에게서 등을 돌리며 민성은 말했고 곧장 문을 열고 나갔다. 은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