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I

by 오종호

소수의 인간들이 설계한 세상은

오늘도 우리를 어디론가 강제로 끌고 간다.

삶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는 한

희망은 유전될 수 있다. - 오르나르



I. 실종

사라진 사람들


벚꽃 잎이 사라진 자리를 햇살이 맹수의 발톱처럼 긁어댔다. 4월의 거리에서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서로를 스쳤다. 민성의 시선은 사람과 사람의 여백에서 꽃잎처럼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4시 반, 저녁 약속까지 시간은 여전히 넘쳤다. 이미 30여 분을 하릴없이 걸어 다닌 후였다. 목이 말랐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자리한 5층짜리 대형 커피숍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창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마네킹처럼 창 밖을 향하고 있었다. 민성의 뺨에서 땀 한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남은 시간을 보낼 곳으로 적당했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은 곳일수록 사람의 소리는 적을 터였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팝음악은 시간의 공백을 채우는데 적당했다. 그 틈에 끼어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가버릴 터였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면서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많았지만 침묵은 말을 이겨내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며, 소리는 이산화탄소처럼 실내를 떠다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길게 빨아들이면서 민성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거리로 시선을 던졌다. 차들은 도로에 눌어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파도처럼 흘러가고 또 오고 있었다. 차도 사람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숲에 풀과 나무가 있듯 도심에 차와 사람은 있었다.


그 많은 사람과 사람 중에서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는 모르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가 처음 나온 지도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실종 신고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나왔고 정부 당국에게는 그에 대한 대책이 없어 보였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말은 속수무책에 대한 좋은 핑계처럼 들렸다. 날마다 장르를 망라한 음모론들이 사이버 세상에 흘러 다녔지만 유언비어에 대한 엄중한 단속 및 처벌 외에 정부가 내세울 것은 없어 보였다. 민심은 흉흉했고 사람들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서로를 바라보고 다녔다. 늦은 밤거리에 사람들은 드물었다. 도심의 대로변 안쪽 골목에 자리잡은 유흥가에는 9시만 되면 찬바람이 불었다.


유리창 이쪽에서 민성은 한기를 느꼈다. 에어컨 바람이 땀을 납작하게 뭉개버리는 중이었다. 의자에 걸쳐둔 얇은 점퍼를 어깨에 걸치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펼쳤다. 모르는 사람들의 무의미한 말들로부터 멀어져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 세계는 또 하나의 세계였지만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였다. 그 세계로 사람들의 환호는 들어온 적 없었지만 민성에게 그 세계는 창 밖의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었다. 밝은 낮에, 사람들은 걱정을 내려놓고 커피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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