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所謂聰者 非謂其聞彼也 自聞而已矣 吾所謂明者 非謂其見彼也 自見而已矣 夫不自見而見彼 不自得而得彼者 是得人之得而不自得其得者也 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也 夫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
오소이청자 비위기문피야 자문이이의 오소위명자 비위기견피야 자견이이의 부부자견이견피 불자득이득피자 시득인지득이부자득기득자야 적인지적이부자적기적자야 부적인지적이부자적기적
-내가 귀 밝다고 하는 것은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한다. 내가 눈 밝다고 하는 것은 외부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모습을 보는 것을 말한다. 무릇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아니라 외부의 모습을 보거나 스스로 터득하지 않고 외부의 것을 얻고자 하는 자는, 타인이 가진 것을 얻고자 하는 자이지 자신이 가진 것을 얻고자 하는 자가 아니며, 타인에게 적합한 것을 추구하는 자이지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다. 무릇 타인에게 맞는 것을 추구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 - 병무(騈拇)
<<장자>> 외편은 <병무> 편으로 시작합니다. '병무'란 엄지발가락이 혹처럼 붙어 있는 것으로 발가락이 네 개인 것을 뜻합니다. 장자는 발가락이 네 개이든 손가락이 여섯 개이든 그것은 본래 그러한 것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해서 늘려서는 안 되고 두루미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발가락이 네 개라고 해서 하나를 둘로 가르거나 손가락이 여섯 개라고 해서 하나를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장자에게는 인의(仁義)라는 인위적 기준이 하는 일이 바로 발가락과 손가락을 가르고 자르는 것처럼 무리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장자는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오히려 어그러지게 만든다고 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도(道)를 깨달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덕(德)과 같은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는 그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버린 채 인의와 같은 인위적 기준에 의거하여 가치 부여된 것을 좇느라 인생을 낭비하며 하늘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인위적 기준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세상살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인들은 이익을 따르고, 선비들은 명성을 좇으며, 대부들은 가문을 일으키고자 하고, 임금들은 천하를 갖고자 합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목숨을 건다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세운 절대적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질주하는 모습에서 장자는 절망합니다. 자신은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장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상실한 채 타인이 수립한 몇 개의 기준에 자신들의 인생을 뜯어맞추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하늘은 먼 존재입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저마다의 신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설정된 방법과 절차를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해 믿음을 보이는 행위를 반복할 뿐, 노자와 장자가 도라고 칭한 궁극의 진리에 대해 탐구하지는 않습니다. 신은 가깝고 하늘은 멀며, 도는 더욱 아득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신보다 더 가까운 신적 존재들이 만들어집니다. 눈과 귀를 지면으로 끌어내릴수록 인간은 현실의 작위적 논리에 휘둘리기 쉬우니까요.
이 시대의 자본과 언론 권력, 검찰과 경찰 권력은 각기 신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능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 합니다. 세뇌된 국민들이 일사불란하게 통제되는 사회가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입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주요 적들을 제거하는 것은 그들의 핵심 과제로 보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 낮은 의식 수준과 허약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시 한 번 확인했기에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악이 악을 행하는데 거침없는 이유는 권력을 잃고 단죄 받더라도 언제든 정권을 되찾아 사면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악인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걷어찬 까닭은 국민들 중에 그들처럼 못된 짓을 하더라도 부와 권력을 향유하는 소수가 되기를 갈구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타인의 것을 얻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서점의 주요 매대에 진열된 무수한 자기 계발서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타인의 것을 욕망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스스로 터득하려는 노력의 과정을 제거하고 타인에게 적합한 것을 추구하게 자극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알고 내면의 힘을 단단히 구축한 사람은 타인들의 삶의 방식과 척도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신의 흉내를 내는 자들의 말과 글을 가려 듣고 가려 읽어 그들이 조장하는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선하고 운명적으로 악합니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나약하고 운명적으로 강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운명적으로 선하고 나약한 자들이 운명적으로 악하고 강한 자들의 논리에 저항해 온 피의 기록입니다. 순간을 보면 절망이지만 시간을 보면 희망입니다. 역사도 인생도 그렇습니다. 노자와 장자의 도를 이해하려면 '운명적'이라는 단어의 진의를 정확히 아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의 섭리가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과 인간이 모인 인간의 공동체의 방향을 선하고 나약한 사람들의 곳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긴 시간을 조망하면 이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선함과 나약함은 각각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않을 수 없음'과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음'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사라지면 더는 인간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한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의 길을 가면 됩니다. 그렇게 인생은 목적지를 향한 묵묵한 '나'만의 여정이 됩니다. 그런 인생들이 모여 역사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신은 없습니다. 하늘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