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by 오종호

何適而無有道邪 夫妄意室中之藏 聖也 入先 勇也 出後 義也 知可否 知也 分均 仁也 五者不備而能成大盜者 天下未之有也

하적이무유도사 부망의실중지장 성야 입선 용야 출후 의야 지가부 지야 분균 인야 오자불비이능성대도자 천하미지유야


-어디에 간들 도가 없겠느냐? 방 안에 감추어 둔 것을 헤아리는 것은 성이요, 들어갈 때 앞장서는 것은 용이고, 나갈 때 뒤서는 것은 의이며, 훔칠 수 있을지 없을지 아는 것은 지이고, 균등하게 나누는 것은 인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대도가 된다는 것은 천하에 있을 수 없다. - 거협(胠篋)



내편을 제외한 <<장자>>의 외편과 잡편은 장자가 아니라 후대에 장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공동 저작물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외편 제3편인 <거협>은 '상자를 열다'는 뜻입니다. 도둑질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 첫머리에서 장자는 좀도둑을 방비하려는 예방책이 오히려 큰 도둑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말합니다.


좀도둑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상자를 끈으로 묶거나 궤짝에 자물쇠를 채워 두지요. 그런데 큰 도둑은 상자나 궤짝을 통째로 들고 갑니다. 그에게는 단단하게 고정한 끈과 자물쇠가 도리어 도둑질을 수월하게 하는데 기여하는 셈입니다. 장자는 세상의 지혜라는 것이 꼭 이 꼴과 같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제나라를 탈취한 전성자의 사례를 인용합니다. 풍요롭고 살기 좋았던 제나라는 그가 권력을 강탈한 후 전씨 가문의 것이 되었지요. 장자는 이것이 단순히 나라를 훔친 것에 그치지 않고, 제도와 규범까지 훔쳐서 도적인 자기 자신을 지킨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하는 일이란 이렇게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작금의 우리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더 살기 좋은 사회, 더 평화롭고 번영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민주 정부가 기울였던 노력과 성취는 국민과 나라를 위해 어떤 기여도 한 적 없는 검사들의 손아귀에 떨어졌습니다. 그 뒤로 나라 꼴이 어찌 되었는지는 정상적인 사고력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훤히 알고 있지요.


장자는 도척을 끌어들여 풍자를 이어갑니다. 도척은 사마천이 백이, 숙제, 그리고 안회와 비교하며 비분강개했던 자입니다. 9천여 명에 달하는 부하들을 이끌고 살육을 일삼은 그는 사람의 간을 즐겨 먹었고 죽을 때까지 풍요와 쾌락을 향유했습니다. '하늘의 도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라는 사마천의 말에는 궁형을 받았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조적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량한 사람들은 사는 내내 고통 받고, 악랄한 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다 천수를 다하고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위의 도척의 말은 이런 세상의 아이러니에 대한 장자 스타일의 풍자인 것입니다.


즉, 도척이 대도가 되어 천하를 주름잡고 향락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인의 도를 깨우친 덕인데, 그렇다면 성인이라는 자들이 한 일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 보다 해악을 끼친 것이 아니겠냐는 반문이지요. 장자의 주장은 당대의 주류 사상에 대한 비판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다수의 국민을 위한 선한 제도, 선한 정책을 펴기 위한 노력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여 사회 발전과 국민의 안녕을 위협하는 악인들을 단죄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그릇된 시스템에 대한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일을 하지 못하니 결국 죽 쑤어 개 주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지요.


악인들은 잔인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데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총선 승리와 이르게 다가올 대선 승리를 통해 정권을 탈환한 후에 민주 정부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사회의 썩은 부분을 모두 도려내기 위해 망설이지 말고 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어설픈 용서를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야말로 개혁을 완수해 나라를 완전히 쇄신해야 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하늘은 이 나라에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