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

by 오종호

苟有其實 人與之名而弗受 再受其殃 吾服也恒服 吾非以服有服

구유기실 인여지명이불수 재수기앙 오복야항복 오비이복유복


-진실로 그런 실상이 있어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재차 재앙을 받겠지요. 나는 받아들일 때 한결같이 받아들일 뿐,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요. - 천도(天道)



사성기라는 사람이 노자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노자가 성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발이 부르트도록 바삐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노자를 보자마자 들입다 쓴소리만 퍼붓고 갑니다. 쥐구멍에 곡식이 흩어져 있는데도 아까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먹거리가 있는데 모으기를 멈추지 않는 것을 보니 성인이 아닌 것 같다는 비난이었습니다.


노자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물러간 사성기는 다음날 다시 노자를 찾아와 전날의 잘못을 깨달았다며 왜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니 신성한 사람이니 하는 것에서 나는 자유롭소. 어제 당신이 나를 소라고 불렀으면 소가 되었을 것이고, 말이라고 불렀으면 말이 되었겠지요." 그 다음 이어서 한 말이 위의 구절입니다.


사성기는 노자에 대한 환상을 품고 왔을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노자의 풍모, 노자가 생활하는 모습 등을 혼자 이리저리 상상했겠지요. 소문이 자자할 정도의 성인이라면 으레 이런 모습이어야 마땅하다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단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순간의 일면만 보고 노자의 전부를 파악했다는 듯이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혼자 있는 동안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노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이 그대를 무엇이라 부르든 그냥 다 인정하고 신경쓰지 마라.' 그럴듯한 사회적 호명을 쟁취하기 위해 퍼스널 브랜딩이니 이미지 메이킹이니 하는 것에 열을 올리는 현대인들에게 노자는 정신 차리라고 찬물을 확 끼얹습니다. 호칭에 집착하는 한 도(道)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것이요, 호칭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한 부실한 내면을 그럴싸한 껍데기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위선자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알튀세르가 말한 대로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합니다. '호명'의 확보를 통해 개인들은 마치 자신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인양 인식하지만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개인들에 대한 예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구축한 호명 메커니즘에 의한 상상에 불과할 뿐이지요. 실상은 호명에 집착하는 한 개인은 더욱 객체화될 뿐인 것입니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주장하기를 꺾지 않는다면 그냥 '날리면'이라고 받아 주면 됩니다. "지금 다시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 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던 대변인의 청각 능력에 감동하고, MBC에 정정 보도하라고 판결한 판사의 현명함에 감읍하며, '이번 판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한 대통령실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면 됩니다.


아울러 우리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 케네디의 외모와 품격, 나폴레옹의 전투 지략과 전술, 벤자민 프랭클린의 도덕적 가치, 소크라테스의 겸손 및 언행일치와 결을 같이 하는 하얀 피부에 미소년의 얼굴과 키 크고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와 동시대를 함께하는 거룩한 영광에 기뻐하고, 그처럼 섬세한 외모를 갖지 못했음을 통탄하면서, 새해를 맞이한 만큼 단단한 근육이라도 키우기 위해 심기일전하는 자세를 갖추면 됩니다.


이것이 '동료 시민'이라고 호명된 이 시대의 우리가 마땅히 인정하고 따라야 할 애잔한 가치일 테니까요. 늘 큰 웃음을 선사하는 이 시절의 풍경이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질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질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