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by 오종호

天有六極五常 帝王順之則治 逆之則凶

천유육극오상 제왕순지즉치 역지즉흉


-하늘에는 육극(천지 '상하'와 사방 '동서남북')과 오상(오행. 목화토금수)이 있다. 제왕이 이에 순응하면 잘 다스릴 수 있으나, 거스르면 흉하게 된다. - 천운(天運)



장자는 혼잣말처럼 질문합니다. 하늘과 땅, 해와 달, 구름과 비, 바람 등을 예로 들며 자연을 관장하는 존재나 기계 장치가 있는 것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함소라는 이름의 무당이 위와 같이 답합니다.


운명의 이치에 대해 진지하게 궁구해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왜 무상한지, 우리는 왜 무아의 존재자일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법칙이 인간의 심신과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마주하면 자칫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인생이 모의 시뮬레이션 속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면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인생의 무가치성을 깨닫는 것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본격적인 깨달음의 첫 걸음일 뿐이니까요. 결론을 말하자면, 인간은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존재자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다회성의 삶이 주어집니다. 각 삶의 내용은 철저히 평가되며 그 결과는 다음 회차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회의 개념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지금의 '나'를 망각한 다음 생의 '나'는 지금의 '나'와 무관한 존재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의 삶의 내용에 대한 평가의 반영치임을 안다면 그것은 지금의 '나'의 삶의 모습을 개선할 동기 부여가 됩니다. 과거로 돌아가 지금의 '나'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나'를 바꾸어 미래의 '나'를 새롭게 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변화 가능성이 허무주의를 극복하게 해주는 운명의 긍정성이며, 지금의 '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다음 생이 아닌 바로 현생의 '나'를 먼저 일신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결정론적 운명관을 뛰어넘게 하는 실마리가 됩니다.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것이 연기론적 운명관입니다. 모든 일은 원인과 조건의 관계 맺음과 상호 작용을 통해 발생하고 전개되며 소멸합니다. 일회적 인생으로 보면 인(因)과 연(緣)은 그 필연적 인과성이 모호해 보일 때도 있지만 다회성의 인생과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연 속에서 살아갑니다. 없으면서 있는 무아적 존재자인 지금의 '나'에게도 더 나은 '나'를 향한 인연을 선사해 주어야 합니다. 꼭 다른 사람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연은 언제나 '순리대로 노력하는 '나' 자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