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遇
貧也 非憊也... 此所謂非遭時也
빈야 비비야... 차소위비조시야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른바 때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 산목(山木)
장자의 허름한 행색을 본 위왕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선생은 그리 고달프게 사시오?" 그에 대한 답변이 위의 구절입니다. 장자는 고달픔이란 선비가 도와 덕을 갖추었음에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원숭이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취지로 쓴소리를 합니다.
"큰 나무를 자유로이 오가는 원숭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도 쉽게 맞추지 못합니다. 반면, 가시가 많은 작은 나무에 있는 원숭이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니 화살을 피하기 어렵겠지요. 지금처럼 어리석은 임금과 무도한 신하들이 있는 시대에 고달프지 않기를 바란들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무능하고 포악한 통치자의 곁에는 간신들만 들끓지요. 장자와 같은 인물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부정부패한 자들에 둘러싸인 멍청한 리더와 함께 뜻을 펼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청렴함과는 담을 쌓고 온갖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부를 축적한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혈안이 된 작금의 상황에 잘 어울리는 내용이지요.
'가난은 불편할지언정 사람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실력을 닦고 때를 만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 고달픈 것은 세상을 구할 깨달음을 얻고 실력을 갖추었어도 그것을 펼칠 때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 같은 놈들이 있는 한 그 때를 만나지 못할 것이니, 어찌 고달프지 않겠는가?' 장자는 지금 이런 뉘앙스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총선은 국민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계속 고달프게 살 것인가, 고달픔을 끝내기 위해 무도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는가?' 국민의 수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