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by 오종호

唯至人乃能遊於世而不僻 順人而不失己 彼教不學 承意不彼

유지인내능유어세이불벽 순인이불실기 피교불학 승의불피


- 오직 지인만이 속세에서 놀면서도 치우지지 않을 수 있으니, 사람들에게 맞춰 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사람들의 가르침을 모방하지 않으며, 뜻을 받아들이되 사람들에게 물들지 않는다. - 외물(外物)



장자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숨거나 인연을 끊는 행위는 앎이 지극하고 덕이 두터운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속세를 떠나 산으로 은둔하는 것으로 '무위자연'을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 그것은 '자연인'의 속성과는 무관한 것이지요. '자연'은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인위적 요소가 배제된 채 도의 작용력에 의해 본래 그러한 대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데 있어서 공간은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든 사람은 정신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감옥을 사색의 광장으로 삼은 신영복 선생님처럼 말입니다.


교회와 절에 가야만 하나님과 부처님을 만날 수 있을 턱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부처님이 인간이 만든 공간에 갇혀 지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곳이 어디든 수행의 장소로 삼으면 됩니다. 어디든 우주의 도로를 질주하는 지구 위의 한 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뒤섞여 아웅다웅 살아가는 세상에서 전지전능하신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력에 감읍하기도 하고, 정신 없는 사람들의 정신 나간 소리를 경청하기도 하면서 '나'만의 철학과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탄허 스님은 절대 바쁘다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바쁘다 소리를 하지 않고 늘 한가롭게 지내면서도 화엄경을 비롯한 방대한 불교 경전들을 번역했고, 유불선에 달통했으며, 미래를 예지할 정도의 깊은 혜안을 확보했습니다. 그는 "성인은 대중들에게 획을 그어 주고, 대중들은 그것을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저 같은 범인은 그가 그은 획을 따라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진정 따라야 할 것은 그의 '공간을 채운 시간 건축술'입니다. 정해진 루틴을 규칙적으로 실행하면서 의식(ritual)화 하면 누구나 자신이 살다 간 공간 위에 멋진 시간의 건축물 하나를 지어 놓을 수 있음을 그의 삶을 통해 배웁니다.


과거의 부실 공사와는 시간의 누수를 차단하는 것으로 결별할 수 있습니다. 죽지 않는 한 우리에겐 무한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 재료를 손에 들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바라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