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그것 안에 인간의 운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진실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냥 진실이다. 인간이 사주팔자를 초월해 살고자 한다면 부처가 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해탈의 경지에 올라서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인생의 행로와 인연, 그리고 사건, 사고가 사주팔자와 대운 및 세운의 조화 속에 다 들어 있다. 운명의 틀 밖으로 인간은 나가지 못한다. 다만, 운명적으로 결정된 범주 안에서 저마다의 디테일을 만들어 갈 뿐이다.
A는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사기를 당해 산 무용지물의 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발 호재가 터져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환골탈태하는 등 그녀는 재복을 타고 났다고 여기며 살았다. 재테크 등을 공부하는 것도 우습게 느껴졌다. 그냥 손만 대고 기다리면 돈벼락을 맞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에 계속 낙방한 아들 T에게 그녀는 일찌감치 많은 현금과 건물을 증여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T는 봄날의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눈높이를 낮추면 공직 생활을 할 수 있는 팔자와 운이어서 T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하지만 세상에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이 중요한 그에게 시선을 아래로 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절실하지 않으면 집중하기 어렵고, 집중할 필요도 없으면 대안을 생각하며 느슨해진다.
공직에 들어가 20여 년간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면 T의 인생은 잔잔한 호수 위의 나룻배처럼 한가로울 것이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은 언제나 그에게 자신감과 여유를 선사할 테니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도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안이 사업이라면 그는 10년 안에 전 재산을 날릴 확률이 높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며 자기 기질대로 통 크게 일을 벌일 것이 분명하므로 수십 억 자산의 30대 부자는 오히려 그만큼의 빚을 지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A의 재복은 좋은 운을 만나 현실이 되었다. T의 재복은 A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과 재산을 물려 받는 운을 일찍 만난 것으로 현실화되었다. 다복한 삶이다. 돈이 신이 된 세상에서 부자로 살아가는 현재까지만 보면 말이다. 박복한 삶을 견디는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일 것이다.
인간의 복이 전생의 공덕 덕분이라면, 다복한 사람이나 박복한 사람이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후자의 사람들은 뭔가 억울할 만하다. 노력해도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하루하루 뼈 빠지게 일해야 먹고 사는 삶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전의 삶의 업보 때문이라니! 하지만 굳이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며, 올바른 방향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멋진 표현은 운명을 알지 못하고서는 무의미한 말에 불과하다. 방향을 찾고 우직하게 그 길을 걷기로 선택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T의 선택을 기다리는 두 개의 방향은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예비해 두고 있다. 둘 다 그의 운명에 담겨 있다.
스스로 박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전화위복을 되새겨야 한다. 시련은 인간을 키우기 때문이다. 사람이 커질수록 운의 쓰임도 커진다. 겸손하지 않고, 반성하지도 않으며, 모든 복이 자기 잘난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더 커지기 어렵다. 자꾸 작아진다. 작은 사람은 한 번의 시련에 와르르 무너진다.
돈은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것은 벚꽃처럼 잠깐 찬란하게 피었다가 금새 지는 경우가 많다. 돈 자랑하는 사람의 사주팔자에는 욕망이 불러들이는 재앙이 씌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 예약 시 두 사람 상담할 테니 상담료를 깎아 달라는 마음씀이 상담하는 도중에 참으로 인색해 보였다. 물건값 깎으려고 흥정하지 말라,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더 얹어 줘라, 그것이 부자의 마음이어야 하고, 그래야 덕을 쌓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식을 위해. 알아 들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