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처음은 끝에서 피어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인 인간사와 세상사는 인간을 선형적 사고에 익숙하게 만들지요. 선형적 사고는 직선적 성격을 강화합니다. 후퇴를 모르는 공격적 성향, 잠정적 손실 상태조차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 이익 중심의 의사 결정과 행동, 흑백 논리와 양자택일의 분별과 차별에 근거한 배타적 가치관 등이 직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기본 속성입니다.
끝에서 시작이 비롯된다는 이른바 종시(終始)의 개념은 순환과 지속이라는 하늘의 이치를 반영합니다. 역(易)의 철학입니다. 그것은 변화의 인식을 통해 영원성의 허상을 직시하게 해주고, 동시에 변화의 중심에 깃들어 있는 불변성의 실체를 깨우칩니다. 종시의 철학을 수용하게 될 때 입체적 사고가 가능해집니다. 곡선적 성격이 배양됩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겸양의 태도, 타인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는 행위, 평등과 조화를 추구하는 포용적 가치관이 곡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다시 3월입니다. 3월은 봄입니다. 겨울의 끝에서 봄은 시작됩니다. 모든 시작(始作)은 시작(時作)입니다. 때를 알고 때에 맞춰 일을 일으켜야 하고, 성실히 시간을 지어야 합니다. 농사짓는 것과 시간짓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3월은 희망입니다. 남쪽 바다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이 얼어붙었던 땅을 녹이듯이, 움츠러들었던 마음의 어깨도 조금씩 풀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것이고,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이 매순간 천지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자입니다. 3월이 선사하는 희망의 힘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3월은 삼일절입니다. 세계 만방에 우리의 자주 독립을 선언한 날입니다. 불의를 끝내고 마땅한 의의 시대를 열겠다는 선포입니다. 정의가 그러하듯이 불의도 반복됩니다. 바로 작금의 이 나라 모습처럼 말입니다. 정의로웠던 사람들이 불의한 세력에게 짓밟혀 강토에 피를 뿌렸던 우리의 근현대사는 아직도 시간의 강물에 오욕의 몸을 씻어 내지 못했습니다. 지배의 추억을 공유한 자들은 패배를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의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연장하려는 그들의 야욕을 좌절시키는 일, 그것이 이번 삼일절에 우리가 다시 한 번 각오해야 할 시대적 과제입니다.
오늘은 갑자(甲子)일입니다. 새로운 시작에 이 보다 어울리는 날은 없습니다. 우주가 열리던 날, 지상은 여전히 어둠 속에 싸인 허깨비와 같았습니다. 실체가 없었으니까요. 그때처럼 미몽에 사로잡힌 땅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깨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법입니다. 이 땅의 바닥에 모여들고 있는 민심의 물줄기가 강으로 불어나고 있는 풍경이 말입니다.
종시의 이치를 거부하는 선형적 사고에 사로잡힌 자들은 강줄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강물의 흐름을 역류시켜 일시적으로 과거로 거슬러 오르게 할 수 있을지언정, 가문 날에도 산과 산이 저마다의 품에서 한 알 한 알 작은 물방울 내어 주기를 멈추지 않기에, 강물은 머지 않아 미래로 이어진 제 길을 찾아 달려갑니다. 산맥 같이 디디고 선 사람들의 가슴 안에서 나온 한 방울씩의 희망이 마르지 않는 한, 그것은 한데 뭉쳐 강물로 모이고 굽이굽이 세월을 감아 돌며 새날의 바다에 도달하고야 말 것입니다.
시작하세요. 오늘 같은 날은 시작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강물처럼, 인생도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