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폭력

by 오종호

漢昭烈將終 勅後主曰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한소열장종 칙후주왈 물이악소이위지 물이선소이불위


- 한의 소열 황제(유비)가 임종하면서 후주(유선)에게 말했다. "악이 작다고 하여 해서는 안 되며, 선이 작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정한 촉한의 유비는 이릉 대전에서 오나라 육손에게 참패합니다. 수많은 군사를 잃고 일순간 국력을 소모했으며 쫒겨 들어간 백제성에서 결국 최후를 맞이하지요. 군주가 유지해야 할 평정심을 잃어 유능한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적 감정을 앞세운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촉의 기반은 사실상 이때 무너진 셈이었으니까요.


말년의 유비는 확실히 총기를 상실했습니다. 그의 치명적인 실책이 이어집니다. 무능한 자신의 아들을 다음 리더로 세운 것은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다면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항상 선한 통치 행위만을 할 것, 그에 반하는 악정은 절대 하지 말 것.' 군주가 군주에게 남기는 말이니, 유비의 유지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요. 어리석은 유선이 이 말을 알아들었을리 만무합니다. 유비는 스스로 선한 임금이라고 생각하여 이 말을 남겼던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리더의 선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유비의 의도는 아무리 잘 포장한다고 하더라도 사사로운 의리 차원을 넘지 못합니다.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의 수장이 마치 통일 국가의 황제처럼 군사를 일으키고 제위를 물려 주었으니까요.


오래 전 들은 이야기입니다. N이 자신의 지인인 요식업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로 성공한 P의 철두철미한 금전 관리를 칭찬하며 말했습니다. "P는 회식 자리에서 직원 하나를 골라 현금을 주고 담배 심부름을 시킨다네. 잔돈에서 백 원짜리 하나라도 틀리면 그 친구는 살아남기 어렵지. 껄껄껄. 진짜 부자들은 십 원짜리 한 장도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니까."


지금보다 물가가 저렴했던 시절이고 담뱃값도 천차만별이었으니 몇 천 원 쥐어 주면 필히 잔돈이 남았을 것입니다. 비흡연자여서 담배 시세에 어둡거나 아무 생각 없이 가게에서 거슬러 주는 대로 받아온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의 직원은 동전 개수에 자신의 자리가 달려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겠지요. N은 좋은 직원이라면 공금 관리에 있어서 십 원 한 장도 틀리면 안 된다, P의 진짜 의도는 그것이라며 그의 돈에 대한 철학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금 관리와 담배 심부름 시 잔돈 착오와의 연결성이 희박해 제가 물었습니다. "P도 룸살롱이나 요정 같은 고급 술집에 다닙니까?" "비즈니스 차원에서 가끔 가겠지?" "그렇다면 팁도 꽤 주겠지요?" 제 질문의 의도를 간파한 N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려면 격을 높인 방법을 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뭔가 좀스럽고 인색하게 느껴집니다. 자기 회사 직원에게는 담배 심부름을 시키며 동전 하나까지 따져 인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고, 술집 종업원들에게는 후한 팁을 주는 것이 부자의 철학이라면 그런 철학을 배워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 말의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아무리 직장에서 월급 받으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도 누가 의도적으로 동전을 훔치겠냐는 것이지요. 나의 의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타인의 의도는 악하게 해석하는 그 이분법이 참으로 악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세상의 각 영역에는 리더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부터 동호회의 장까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상하 관계가 설정됩니다. 그 관계에서 작동하는 힘이 권력이지요. 모두가 불완전한 인간인 만큼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언제나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습니다. 현대 국가가 삼권 분립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이지요. 하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보듯 대통령이 검찰과 언론을 장악하여 작심하고 권력을 남용하면 마땅한 통제 수단이 없습니다. 하물며 민주화된 우리 사회의 국가 권력도 이러한데 사실상 독재 체제인 일반 기업에서 권력의 견제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결성과 노조원들의 운동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지요. 이 법적 권리마저도 제대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데 무관심한 권력자는 민주 국가에 걸맞지 않습니다. 나라의 자원을 자기 멋대로 사용하고, 국익을 훼손하며, 국가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권력자는 불필요합니다. 교체되어야 마땅합니다. 권력자를 판단하는데 있어 그의 의도는 중요치 않습니다. 권력은 의도하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라고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망조가 든 나라를 복원하기 위한 권력 심판을 넘어 권력 교체의 기회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압도적 승리가 필요합니다.


유비는 착하기라도 했지요. 선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보는 눈이라도 있었지요.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국민의 상당수는 선명한 악을 지지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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