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안

by 오종호

인간에게 시간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인간은 시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인간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 안에서 산다. 인생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시작과 끝의 경계를 가진 인연과 사건의 이야기들로 채워진 옴니버스 연극이다. 하나의 주제로 귀결될 수 있을 때 그 인생은 보통의 것에서 벗어나 탁월성을 획득하게 된다.


인간은 인간의 시간을 산다. 인간은 자연의 시간을 살지 못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인간이 탁월성을 획득하는데 실패하고 소멸되는 이유다. 인간이 인간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시간의 본질과 무관하게 효율성과 소통성을 제고하려는 인간 사회의 의도에 의해 임의로 체계화된 시간의 규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인간에게 감옥으로 작동한다. 시간의 본질은 절대적 자유다. 시간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통제 받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시간이다. 탁월성을 갖기 위해서는 인간의 시간을 자연화해야 한다. 감옥화된 시간을 자유화해야 한다. 인간이 본질을 되찾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의 주제를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전 정부의 검찰총장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자신의 인생이 마침내 하나의 주제로 귀착되었다는 통쾌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한 나라의 권력의 정점에 선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상에서 꿈꿀 수 있는 탁월성의 대표격이니까. 하늘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부여 받은 특별한 인간이라는 상징적 사건과도 같은 것이니까. 0.73%라는 간발의 차이는 그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긴 건 이긴 거니까. 상대 팀이 우리 팀 골대를 10번을 강타한들 우리 팀이 한 골을 넣어 1:0으로 이기면 이긴 것이니까. 1표라도 더 얻어서 이겼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갖는 승자의 지위에 올라선 것이니까.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끝이 정해진 시간의 마디 속으로 웃으며 걸어 들어간 자가 웃으며 걸어 나오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완성이라고 여겼을 자신의 인생의 주제가 새로운 시간 속에서 얼마든지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100명 중 99명이 반대해도 '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은 개인의 시간 안에서만 강단이나 신념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공적 시간을 사용하는 자의 아집과 독선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우 받는 시대는 지났다, 총과 탱크를 가졌던 구시대의 독재자들을 부러워한들,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시민은 없다. 제아무리 업적을 자화자찬해도 시간을 채웠던 일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통령은 자신이 들어서지 말았어야 할 길로 접어들었음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승자의 쾌감을 만끽하며 시작한 그의 공적 시간은 곧 역사다. 역사 안으로 발을 디딘 사람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 첫 심판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시간이 지속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많은 시민들의 냉혹한 심판의 결과 앞에서도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변하든 변치 않든 상관없이 그의 성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가 인간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며, 누적된 시간의 산물인 역사는 자연의 시간을 닮아간다. 자연은 언제나 순리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