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본능

by 오종호

군바리. 개병주의 원칙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하는 우리나라 남자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이 호칭으로 불린 적이 있을 것이다. 네이버 오픈사전에 따르면 '바리'는 일본어로 군대에서 잔밥을 처리하는 개를 지칭하는 단어다. 그렇다. 나라라는 주인에 의해 목줄이 채워진 채 끌려가 주는 대로 짬밥을 먹으며 사회로 풀려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사병 예비역들은 한 때는 인간 개였다. 물론 자유자재로 시력을 조절하는 능력 등을 타고난 덕에 군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던 소수의 엑스맨들은 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카투사 시험에 합격하여 논산 훈련소에서 정규 훈련을 받은 나는 카투사들에게만 해당되는 3주간의 연장 훈련을 이수하기 위해 평택행 밤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가림막이 내려진 창문.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무릎에 주먹 쥔 손을 얹고 맞은 편 훈련병의 모자챙에 시선을 둔 채 나는 전날부터 몸을 휘감은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 될 대로 되 버리라고 당장이라도 풀썩 쓰러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은 것은 내가 군인이 되었다는 현실감의 무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나는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조교를 불렀다. 토기가 심해져 주위에 민폐를 끼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몸 상태를 얘기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도록 허락해 주길 바란 나에게 조교는 말했다. "엄살 부리지 마 이 새꺄."


그 후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자정 넘은 시각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난생 처음 듣는 구령에 맞추어 정신 없이 이동하다가 숙소의 침대에 몸을 눕혔다 싶더니 기상 호각 소리와 위압적인 고함들에 몸을 일으켰다가 어느새 영어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동틀 기미조차 없었던 이른 새벽,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시험지에 시선을 두고 나는 죽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시험이 끝난 후 이동하기에 앞서 나는 짬밥을 가장 많이 먹은 듯 보이는 교관에게 나의 상태를 알렸다. 뭐라고 말하려다 멈춘 그는 내 이마에 손을 댄 후 숙소에 돌아가 자고 있으면 병원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 의사의 진료와 간호사의 처치가 끝나자 함께 있던 카투사 의무병이 희미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너 뒈질 뻔 했어 임마." 나는 살아 남았다.


완전 군장으로 구보에 이어 얼차려를 받은 훈련병이 사망했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우리 군대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죽고 있다. 나는 묻고 싶다. 왜 사람을 죽이는가? 왜 한 청춘의 가능성을 그토록 허망하게 지게 만드는가? 국가가 영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강한 군대를 육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그 당연함과 숭고함 사이에서 군인의 생명이 어처구니 없이 희생되는 일이 반복되어도 군대는 당연히 강해지고 군복무는 여전히 숭고할 수 있는가?


채상병 특검법 국회 재의결이 있는 날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진실을 감추고 핑계 대기에 급급했던 고위 장성들과 그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권력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만일 여당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표결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정권의 붕괴와 수구 정당의 존립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역사적 신호탄이 될 것이다.


여당 의원들은 이제 답해야 한다. 그대들에게 채상병은 숭고한 의무를 다한 군인이었는가, 군바리였는가? 그대들에게 소중한 것은 국민의 생명인가, 무능한 권력자와 그대들의 이익을 지키는 일인가? 물론 후자라고 답해도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구축한 그대들의 정체성이므로.


그럼에도 그대들은 알고 있다. 그대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권력의 몰락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대들의 피에 흐르는 생존 본능이 무엇이 살길인가를 이미 말해 주고 있을 것이니. 본능에 충실하길 권고한다. 그대들이 본능을 외면해도 괜찮다. 시간은 그대들의 편이 아니니.


시간의 본능은 정의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