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시간

by 오종호

뤼키아(지금의 튀르키예) 사람들은 괴물 키마이라(또는 키메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다. 사자와 산양을 합친 얼굴을 하고 용의 꼬리를 가진 키마이라는 입으로 불을 내뿜으며 사람들을 죽이고 땅을 불태웠다. 왕 이오바테스의 부름에 응한 용사들이 키마이라를 없애기 위해 용감하게 달려들었지만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숯으로 변할 뿐이었다.


7qJbGotJzZe7VeCpTOUMgJ7Be2mOiP-3PN57ycYdmB1WbGOR1f0WTi-57oxczaIki-e9Yyd-LwVFCh7qbWzES8mFS-FNiti-xndJ.png 1553년 이탈리아 아레초의 키메라 청동상. 출처: 나무위키.


어느 날 벨레로폰이라는 젊은이가 이오바테스 앞에 나타난다. 그는 왕에게 왕의 사위 프로이토스가 보낸 밀봉된 편지를 건넨다. 편지에서 사위는 벨레로폰이 영웅 중의 영웅임을 밝히면서도 그가 자신의 아내 안테이아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것 같다며 잘 처리해 주길 요청했다. 말하자면 키마이라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하라는 얘기였다.


키마이라에게 곧장 달려가는 대신 벨로로폰은 예언자 폴리이도스를 찾아간다.


"키마이라를 죽이기 위해서는 페가소스가 필요하오."

"페가소스는 아테나 여신의 황금 고삐에만 복종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수로 그것을 구합니까?"

"간절히 구하면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실망한 채 터벅터벅 길을 떠난 벨로로폰. 날이 저문 그의 앞에 두 개의 신전, 아프로디테 신전과 아테나 신전이 있었다. 폴리이도스의 예언을 기억한 그는 정욕과 여독을 풀어 줄 여사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을 외면하고 지혜와 전쟁의 여신을 모시는 아테나 신전에 들어 잠을 청한다.


벨레로폰을 기특하게 여긴 아테나는 그의 꿈에 나타나 황금 고삐를 내릴 테니 페가소스를 부려 뜻을 이루라고 말한다. 잠에서 깬 벨레로폰의 옆 신전 바닥에는 아테나의 황금 고삐가 놓여 있었다.


이오바테스는 하늘을 나는 페가소스를 타고 키마이라를 죽이는데 성공한 영웅을 사위로 삼고 왕국까지 넘겨 주고는 은퇴해 버린다. 반면, 오만에 빠진 벨로로폰은 페가소스를 타고 올림포스를 향해 날아오른다. 항룡유회. 하늘 끝까지 오르려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추락 뿐. 그의 비상을 지켜보던 다혈질 제우스는 벼락을 내리려다가 마음을 바꿔 페가소스의 꼬리 밑에 등에 한 마리를 붙여 놓는다.


등에가 피를 빨기 시작하자 꼬리를 치며 요동치는 페가소스의 등에서 튕겨 나온 벨레로폰은 '방황의 들'이라는 뜻의 알레이온 들판에 떨어진다. 간신이 목숨을 구했으나 절름발이에 장님이 된 그는 세상을 방황하다가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우리의 대통령은 신화 속 인물들을 섞어 놓은 듯한 캐릭터다.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를 몰다가 세상을 초토화시킨 파에톤과 괴물을 처치하고 왕위에 올랐으면서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비상을 시도한 벨레로폰을 반씩 합성한 듯한 유니크하면서도 그레이트한 인물. 그의 거대한 위력 앞에서 나라는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처럼 위태롭다. 그의 원더풀하면서도 판타스틱한 능력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그는 너무 강하다.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그를 설명하기에 너무 작다. 인간을 초월한 그는 초통령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부디 높이 높이 오르시라. 오르면 오를수록 이 땅이 얼마나 작게 보이겠는가. 앱솔루트 파워를 가진 그가 통일 대통령에 만족할리 없다. 일본까지 접수하려는 야망을 유화책으로 위장하고 있는 그의 깊은 뜻을 나는 안다.


그의 광휘로 달궈진 새로운 나라에 살면서 덥다고 투덜대는 것 역시 불충한 일이다. 친국가세력의 일원인 나는 덥지 않다. 가끔 눈이 시릴 뿐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초통령의 뜻을 받들어 나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자유를 허여하신 그의 자애로움에 감읍할 따름이다. 부디 지금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시길. 이후에 펼쳐질 그의 이야기도 영웅적 서사에 걸맞은 감동적인 것이 아닐 수 없을 테니, 나는 오늘도 그 내용이 몹시도 궁금해 잠을 설칠 것이다. 절대 열대야 때문은 아니다.


그가 써나 갈 '가을의 전설(Ledgends of the Fall)'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