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 천하를 취하고자 도모한다면 내가 보기에 그는 얻지 못할 것이다. 천하란 신령스러운 그릇과 같아서 도모할 수 없다. 도모하는 자는 패할 것이며, 쥐는 자는 놓칠 것이다.
<<도덕경>> 29장 첫 단락의 내용이다. '도-하늘-땅-왕'의 수직 구조 하에서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만물을 기르는 땅처럼 만백성을 위하는 무위의 리더십을 실천해야 할 의무를 가진 군주가 책임을 방기하고 스스로 하늘이 되고자 꾸미는 일은 하늘의 허락을 받지 못한다고 노자는 단호히 말하고 있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법의 해석을 등에 업고 거리로 풀려나 개선 장군처럼 무사유의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한가로이 거닐던 내란 수괴 윤석열의 가증스러운 얼굴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부조리함을 다시 경험하게 했다. 끊임없이 우리의 자아와 충돌하는 대한민국 사회라는 이름의 세계의 부조리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대면하는 능력을 상실한 자들의 주관적 세계 인식이다. 부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힘 있는 자들은 역사와 시대라는 정상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는 대신 선민의식이라는 필름이 코팅된 편광 거울 뒤에서 세계를 조작하며 조롱하고, 왜곡된 거울에 맺힌 자신들의 상을 보고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폭민들은 조작된 세계의 천장에서 내려온 끈에 매달려 꼭두각시 춤을 추는 것, 이것이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란의 부조리극의 실체다.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응시하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성의 힘이 결여되어 있다. 거울처럼 머리 위에 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아는 사람만이 반성의 힘을 갖는다. 반성의 힘이 곧 사유의 힘이다. 반성할 수 없는 사람은 사유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lessness)'로 무장한 악마들이 좀비들을 조종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 가려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기어코 박살나는 암흑의 사회를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이번 윤석열 석방의 본질이다.
악마들은 부조리극의 결말을 학살극으로 연출하고 싶어 한다. 악마들은 살아 있다. 살아서, 달콤한 피비린내에 군침을 흘리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니다. 악마와 사람의 대결이다. 악마는 지배되지 않는 영혼을 가진 사람을 살려 두지 않는다. 주관과 객관, 무반성과 반성, 무사유와 사유, 무지성과 지성, 반민주와 민주, 그리고 죽음과 삶의 승부를 우리는 치르는 중이다. 하늘은 저절로 승리를 안겨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