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이라는 페스트

by 오종호

1940년대 알제리 오랑 시. 진찰실을 나서던 의사 베르나르 리유의 눈에 계단에 널브러진 쥐 사체 하나가 들어온다. 쥐 한 마리의 죽음은 쥐들의 떼죽음으로 확산되고, 그것은 곧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쥐와 인간의 죽음의 원인이 페스트로 판명되며 공포에 짓눌린 오랑 시는 극도의 혼란에 휩싸인다. 리유는 고백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뜬금없이 TV 화면에 면상을 내민 윤석열은 페스트에 감염된 쥐의 마음에 공감이라도 하게 되었는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한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라고 떠들었지만, 정상적인 식견을 가진 국민들은 즉시 알아차렸다. 알콜에 중독된 망상 장애자가 국민들을 다 죽여서라도 영구 집권하고야 말겠다는 야욕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임을.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친위 쿠데타는 국회의사당으로 모인 시민들의 저항과 국회의 신속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로 2시간 35분만에 1차 진압되었다.


외부와 단절된 오랑 시에서 시민들은 격리된다. 시 당국의 엄격한 통제 하에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진 사람들은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상실된 미래 앞 시간 속을 그저 표류한다. 페스트를 신의 벌이라고 설교하는 파늘루 신부. 그는 지껄인다. "형제들이여, 재앙이 닥쳤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리유는 페스트에 대한 그의 신학적 해석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어느 날 사람들에게 닥친 지극히 현실적인 위기일 뿐이었다.


좌절된 윤석열의 독재의 꿈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그를 본받아 뇌를 술에 절이는 취미를 공유해 왔던 것인지, 신의 대리인을 자처해 온 자들과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연예인, 입시 강사 등이 계몽과 국민저항권 따위의 오염된 언어를 살포하며 내란의 원인을 야당과 야당 지도자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국민들이여, 계몽령이 선포되었다. 국민들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계몽되어야 한다!" 썩은 쥐의 피를 빨아먹었는지 그들이 찍찍대는 소리는 인간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따라서 시민들은 계몽되지 않은 상태로 남았다. 시민들은 다만 어느 날 미치광이가 초래한 비현실적 위기를 하루속히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


무능한 권력 기관들을 대신해 기자 랑베르, 공무원 그랑, 자원봉사자 타루 등의 사람들이 위생과 보건을 위한 자발적 조직을 결성해 페스트에 맞서기 시작했다. "나는 페스트와 싸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그랑의 말은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저항의 동기를 잘 드러낸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연대했지만 비겁한 사람들은 도망쳤고, 개념 없는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내란 수괴 윤석열과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들의 후안무치함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기 시작했고 내란 음모는 수면 아래에서 지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종식되지 않는 내란으로 인한 불면증, 우울증 등을 호소하면서도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어둠을 밝혔다. "민주주의가 죽은 독재국가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는 시민들의 말은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 민중의 선한 의지를 단순하고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빛으로 연대했지만, 비겁한 자들은 국민을 죽이려 했던 미치광이 독재자의 편을 들었고, 아무 생각이 없는 자들은 폭동을 일으키며 질서를 어지럽혔다.


페스트의 창궐은 정점으로 치달으며 일상을 죽음으로 채웠다. 그 중에서도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 어린아이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저항의 의지를 강화시켰고, 누군가에게는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신부 파늘루는 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신의 심판이라는 초월적 태도를 버리고 이 땅 위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음의 말로 선언한다. "영생의 기쁨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내란 수괴의 '탈옥'은 한없이 늘어지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과 맞물려 시민들 마음에 자리한 불안의 크기를 증대시켰다. 그것은 좋은 대학을 나와 권력을 획득하는데 성공하고 이익을 독점해 온 법 기술자들과 귀족 관료 카르텔의 막강한 위력을 새삼 절감하게 했고, 자칫 공동체의 처절한 붕괴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키웠다. 진영과 진영으로 나뉜 사람들 간의 갈등의 골은 깊을대로 깊어졌다. 갈등을 극단적으로 키우는데 악마적 재능을 보여 온 일부 성직자들은 날이 갈수록 궤변을 증폭시켰다. 그들은 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윤석열이야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와 같으니, 그의 귀환이 곧 신의 뜻이다!" 이런 논리를 가진 그들의 말은 악마를 대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페스트는 일단락되었지만 그것은 온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남은 사람은 동지를 잃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다만 남겨져 있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 않으며, 언제든 인간의 곁으로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내란 수괴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지만 아직은 온전한 승리가 아니다. 그 자는 감옥 밖에 있고, 그를 탈옥시킨 자들과 그의 뜻에 동조하는 자들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우리 사회에 뿌린 내란이라는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 않으며, 언제든 우리 곁으로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완전한 청산과 개혁, 그것이 선행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화합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우리 자신은 이번 페스트에 모두 죽다 겨우 살아났을 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