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First Day)-13. 이불

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by 오종호

거리는 한적했다. 로니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상점들의 영업이 모두 종료된 자정 가까운 밤늦은 시각이었다.


이불 가게 앞을 막 지나치려 하는데 조명이 깜박깜박하며 전기가 누전되는 듯한 지지직 소리가 났다. 로니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불 꺼진 간판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간판과 매장 안이 다시 환하게 밝아지자 갈 길을 가려는데 한 아줌마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놀란 눈의 로니카에게 아줌마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축하해요.”

“네?”

“저희 매장에서 특별히 준비한 고객 선물이 있는데 아가씨께서 당첨되셨어요.”

“제가요?”

“신상품 출시 기념으로 이 시간대에 지나가시는 분들께 며칠 동안 깜짝 선물을 드리고 있거든요. 자, 여기 있습니다. 보기 보다 아주 가벼워서 아가씨 혼자 들고 갈 수 있으세요. 저희 제품 좋은 거 다 아시죠? 잘 덮으시고 가게 홍보 좀 부탁드려요.”


로니카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며 아줌마가 말을 덧붙였다.


“아! 걱정 마세요. 공짜니까요. 안녕히 가세요. 저희 매장 자주 들러 주세요.”


로니카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아줌마는 매장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다소 황당하지만 땡 잡았다고 생각하며 로니카는 이불 가방을 흔들면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아까처럼 매장 간판이 몇 번 깜빡이며 불꽃이 튀더니 매장 안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삽시간에 어둠 속에 잠겼다.

DALL·E 2024-06-08 14.30.39 - A mystical pastel-toned illustration of a scene involving a mid-twenties Korean woman named Ronika and a middle-aged shop lady. The scene is set in fr.png


아줌마는 이페에게 이불을 떠넘기다시피 손에 들려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페가 떠나자 간판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점멸하다가 꺼지고 매장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DALL·E 2024-06-08 14.33.51 - A mystical pastel-toned illustration of a scene involving a mid-twenties Korean man named Ife and a middle-aged shop lady. The scene is set in front o.png


이페는 머그잔을 들어 단숨에 커피를 들이켰다. 식탁에 시선을 둔 채 미동도 않고 앉아 있는 진희. 이페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진희, 아니 로니카. 결국 그 아줌마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란 말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이페. 바로 저것 때문이죠.”


침대 위의 이불을 가리키며 진희가 말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당신한테도 그러던가요, 이불이?”

“맞아요, 황당해 하면서도 저 이불을 덮지 않고 자기도 했고, 심지어 버리기도 했는데 일어나 보면 어느새 덮어져 있더라구요.”

“음…… 당신도 그 아줌마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겠군요.”

“그런 아줌마는 근무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매장도 늘9시에 문을 닫구요. 그때가 12시 정도는 됐었죠 아마?”

“맞아요. 나도 그랬죠.”

DALL·E 2024-06-08 14.49.47 - In the style of 'The Little Prince,' create an emotional illustration. A 9-year-old girl named Jinhee and a young man in his mid-20s named Ife are sit.png


이페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우습죠?”

“우리를 봐요. 너무 웃기잖아요. 나와 당신의 지금 모습. 틀림없이 내일이면 나는 정우가 될 거고 당신은 로니카가 되겠죠. 이건 정말 드라마틱한 저주예요. 하하하.”

“딱 하나만 빼구요. 31일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렇군요. 일 년에 절반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모자라 며칠의 보너스까지 선물해준 거군요. 고맙게도 말예요. 이제 그만 가야겠어요. 오늘 미쳐 버리지 않으려면 하하하.”

이페가 의자에서 일어나 가려고 하자 진희가 이페를 바라보았다.

“정우 옷과 가방은 다 말랐을 거예요, 저기 걸려 있어요. 그리고…… 내일 공원에서 만날래요? 할 일도 없잖아요?”

“……”

“내 음식 맛 기억하죠?”


이페가 말없이 가려 하자 진희가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옷은 다른 것으로 갈아 입는 게 좋겠어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야겠네요.”


이페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