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Master)-1

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by 오종호

견성사(見性寺)라는 암자에 편재(遍在)라는 법명의 주지 스님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스승이 내린 실제 법명인지 아니면 그의 몇 안 되는 제자들이 지어 준 별명인지는 분명치 않았으나 하여간 그는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DALL·E 2024-06-23 21.33.01 - An illustration in the style of 'The Little Prince,' featuring a 60-year-old Korean monk named Pyunjae. The monk has short hair typical of traditional.png


편재 스님이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무미(無味) 스님의 사연이었다. 새벽 두 시에 몰래 공양간에 숨어들어 찬밥 한 덩이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알루미늄 배트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은빛 지팡이가 먼저 입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앞니 세 개를 시원하게 잃어 버린 나이 서른의 무미 스님은 그 날 이후 한 동안 강의 남쪽에 있는 이름난 치과들을 모조리 찾아 탁발을 다녔는데 마스크를 쓴 간호사들과 약 2초 동안 안면을 익힌 후 두 번째 방문에 나섰을 때는 희한하게 모든 치과의 입구에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DALL·E 2024-06-24 09.43.07 - A 30-year-old monk named Mu-Mi, not too young in appearance and not too old, is smiling foolishly with several of his front teeth missing due to being.png


또 하나의 일화는 국민들에게 진정한 법조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늦은 나이지만 로스쿨에 도전하겠다고 절을 찾은 한 만학도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 만학도가 말하길 자신은 돈이 많지만 큰 뜻을 품었기에 공부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며 절의 일 년치 운영비에 해당하는 돈을 쾌척하고 난 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신이 조금이라도 나태해진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그때마다 깨우쳐 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합격의 그날까지 묵언 수행을 해나가겠다는 각오와 함께.


다음날부터 새벽 세 시에 일어나 108배를 올리고 이른 아침 공양을 마친 후부터 좌선하듯 공부에 빠져 든 만학도가 잠시 졸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은빛 지팡이가 날아와 머리통을 때렸는데, 이후 졸음이 밀려올 때면 책을 들고 숲 속을 거닐며 졸음을 이기고자 하였으나 서 있어도 졸음은 끝도 없이 쏟아지는 것이어서 숲 속에서조차 날아오는 매 타작에 머리통에 성한 부분이 남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DALL·E 2024-06-24 09.57.13 - A 77-year-old bald mature student, standing in a forest and dozing off while holding an open book. His head is drooping forward, showing his profile, .png


만학도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한 스님이 일찍 잠자리에 들어 늦게까지 푹 자고 낮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108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하더라도 계곡물에 땀을 씻고 나서 공부하면 더 잘 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만학도의 고집은 대단한 것이어서 머리통이 공갈빵처럼 부풀어 오를 때까지 공부하면서 졸다가 맞기 또는 졸면서 공부하다가 맞기는 계속되었다.


여느 때처럼 은빛 지팡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 어느 날, 숲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만학도는 다짜고짜 짐을 챙겨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법으로 세상을 바로잡기에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 그 동안 자신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한 스님에게 귓속말을 남겼다는 후문이었는데, 그 스님이 만학도가 떠난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을 때 벽에 굵은 매직으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내 나이 일흔 일곱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더 이룰 것인가.

은빛 지팡이에 세상을 알았으니

영원한 잠에 빠지기 전에

힘써 깨어 즐기고자 한다


몇 안 되는 제자들은 만학도가 조는 순간마다 편재 스님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는지 경이로웠지만 차마 입을 열어 물어볼 수 없었던 것이 자신들의 머리통의 안위에 대한 집착이 여전히 호기심보다 왕성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스님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는데, 삼일 동안의 짧은 시간 동안 만학도가 유일하게 묵언 수행을 깨뜨린 대상인 청소 담당 스님이었다. 책을 펼치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만학도는 언제 어느 때라도 30초 이내에 무념무상의 삼매에 빠져드는 탁월한 경지에 올라 있었음을 그 스님은 알고 있었다.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하는 편재 스님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리는 없는 것이었으니, 아무 때고 만학도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그곳에 지팡이를 기다리고 있는 무념무상의 머리통이 대기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DALL·E 2024-06-24 10.08.39 - A 77-year-old bald mature student, sitting inside a temple room and dozing off while holding an open book. His head is drooping forward, showing his p.png


만학도가 남기고 간 일년 치의 운영비에도 불구하고 속세에서라면 흔한 회식 한 번 없자 몇 안 되는 제자들이 하나 둘씩 다른 절로 떠나갔다. 무미 스님의 입맛이 예전만 못해진 어느 날 편재 스님은 요리 학원에서 눈이 맞은 남자를 따라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한 여신도가 버리고 간 개를 거두어 키웠는데, 유일하게 남았던 제자인 무미 스님마저 '교회의 넘치는 사랑에 힘입어 깨달음을 얻고 하산한다'는 메모를 찬밥의 밥풀을 이용해 가마솥 뚜껑에 남기고 떠난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터였다.


편재 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네가 있는 곳이 네가 있을 곳이라며 교회에서라도 성불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건넬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무미 스님은 자신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종한 여신도를 통해 표창장과 함께 임플란트 무료 시술권을 보내온 ‘사랑이 넘치는 교회’야 말로 도를 향해 정진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는 판단이었다.

DALL·E 2024-06-24 10.14.28 - An older monk named Pyunjae, sitting and gently petting a young Jindo dog. The setting is calm and serene, reminiscent of a traditional temple environ.png


처음에는 하루 삼시 세끼 공양을 직접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편재 스님이 점점 그것에 익숙해져 간 데에는 개의 존재가 매우 크게 작용했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며 꼬리를 살랑 흔들고, 밥을 내어 주면 밥풀 하나도 남김없이 혓바닥으로 깨끗이 비우는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이면 깨어 예불을 드리는 내내 옆에 엎드려 있다가 아침이면 따뜻한 아침 햇살을 쬐며 단잠을 즐기고, 낮이면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와 꽃과 풀의 냄새에 푹 빠졌다가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다소곳한 자세로 예불에 참여하는 녀석의 모습은 대견한 것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중의 암자여서 그런지 원래 주인에게 버려지고 편재 스님에게 거둬진 날부터 녀석은 단 한 번도 짖지 않은 채 마치 묵언 수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완벽한 침묵 상태를 유지하였다.


매 순간 어디에나 존재했던 편재 스님일지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 작은 절에서 날마다 동일한 일상을 사는 것이 다름 아닌 불현듯 밀려드는 외로움과의 대결이었기에 녀석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 해 한 해 세월이 갈수록 공유한 시간은 일각의 낭비도 없이 그대로 둘 만의 사이 안에 녹아 들고 축적되어 삼 년이 지날 즈음에는 함께 잠자리에 들고, 함께 일어나 새벽 예불을 드리고, 함께 아침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시주 받으러 나가고,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저녁 예불을 드리고, 다시 함께 잠자리에 드는 관계로 숙성되기에 이르렀다. 둘이 떨어져 있는 때는 편재 스님이 해우소에 들어가 앉아 있는 동안 해우소 밖에서 녀석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뿐이었다.


맛없는 식당에 손님 오듯 몇 개월에 한 번씩 산행 중에 길을 잃고 우연히 절에 찾아 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스님과 개의 다정한 사이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편재 스님과 개를 일컬어 영혼의 동반자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아마도 전생에 스님이 개였을 때 그 개가 스님이지 않았겠느냐는 하나마나 한 추측을 너도나도 입을 모아 할 정도로 둘은 매 순간 어디에나 함께 존재하는 사이였다.

DALL·E 2024-06-24 10.23.02 - An older monk named Pyunjae and a young Jindo dog, walking together through a forest freely without a leash. The monk and the dog are enjoying the ser.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