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Master)-3(완결)

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by 오종호

“그 개는 독구요. 내 개입니다.”


여인의 대답에 편재 스님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은빛 지팡이를 들어 붉게 탄 노을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리는 목어를 가리키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이오?”

“그것은 목어이지 않습니까?”


그걸 문제라고 내냐는 듯 한심하다는 투로 여인이 대답하자 편재 스님은 목어를 떼어 그녀의 발 앞에 던지며 말했다.


“그것이 그대의 독구요. 데리고 가시오.”

DALL·E 2024-06-25 10.52.14 - An emotional illustration in the style of 'The Little Prince' with plenty of white space. The scene depicts a traditional wooden Mok-eo (wooden fish) .png


편재 스님의 말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저 땡중이 지금 뭐라는 거여?”


인생의 삼일 간은 수많은 혹으로 머리통이 퉁퉁 부어 있었던 노인이 지팡이를 쳐들고 소곤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눌러 버리려는 듯이 소리 높여 말했다. 하지만 편재 스님은 노인의 말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태연하게 사람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대들의 주인은 어디에 있길래 그대들은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것인가?”


편재 스님의 질문에 사람들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고, 과거에 불자였던 여인과 행자였던 사내와 만학도였던 노인도 덩달아 뻘쭘한 표정으로 불언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TV 프로그램의 연출자만 연신 눈짓과 손짓으로 스태프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대들의 말은 다만 잡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들의 주인을 데려오면 내가 기꺼이 그들과 이야기하겠다.”


순간 세 사람을 향해 지팡이를 가리키며 편재 스님이 호통을 치자 세 사람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입만 바라보며 우물쭈물하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그대들의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편재 스님! 되도 않는 질문 관두시고 이 여인에게 어서 그 개를 돌려 주십시오.”

“이 개에게는 주인이 없거늘 어찌 주인이 따로 있는 자가 스스로 주인인 개에게 왈가왈부하는 것인가?”

“그 무슨 궤변이세요?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 하여도 개는 제 주인을 알아보는 법. 독구야, 이리 온. 엄마다. 엄마가 맛난 것 줄게. 이리와, 어서.”


여인이 손가방에서 소시지를 꺼내어 개를 유혹했지만 개는 한 번 힐끗 여자를 쳐다보았을 뿐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자 당황한 여인이 돼지 귀를 잘라 말린 것이며, 칠면조의 힘줄 말린 것이며, 뼈다귀 모양을 한 간식 등을 차례로 코 앞에 디밀었으나 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도대체 개를 얼마나 지독하게 훈련시켰으면 이럴 수 있을까요. 안 그래요, 여러분? 자기 말만 듣게 만들었음에 분명해요. 그렇다마다...”


자신이 잔뜩 준비해 온 먹거리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괘씸하다는 듯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여자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떠들어댔다. 몇 명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개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로 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편재 스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DALL·E 2024-06-25 11.06.51 - An emotional illustration in the style of 'The Little Prince' showing a proud and confident Jindo dog staring straight ahead with a dignified expressi.png


“무릇 세상에 인연 아닌 것이 없으니 만남은 만남 대로 헤어짐은 헤어짐 대로 모두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어긋난 인연은 그것으로 끝인 것이니 모든 인연의 끝에서 각자 새로운 인연의 끈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미 매듭 지어진 인연을 현재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복숭아 나무를 두고 원래는 그대가 육 년 전에 먹고 버린 복숭아 씨였으니 나무를 내놓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따름이다. 이 개는 자신에게 다가온 인연의 끈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았으니 어찌 삶의 주인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이 자그마한 암자에 한 때 머물렀던 인연의 끈으로 오늘 이렇게 서로 똑같은 미혹된 소리만을 지껄이고 있으니 필시 같은 주인을 섬기는 것인즉, 그 명령에 따라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대들이 헛된 사욕으로 떠드는 소리가 산짐승들의 귀를 더럽히고 그대들의 입에서 나오는 썩은 내가 나무들의 숨을 막고 있으니 그만 썩 물러가길 바란다.”


편재 스님의 음성은 잔잔한 바람처럼 고요한 산사의 곳곳을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세 사람을 안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생을 즐기려고 했지만 뭔가가 어긋난 것이 틀림없는 노인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흔들며 지팡이로 땅을 힘껏 내리치고 말했다.


“개가 삶의 주인이라니 저 무슨 듣도 보도 못한 헛소리인가. 우리 둘은 다만 저 여인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역시 억울하게 제 주인에게서 떨어진 불쌍한 개를 원주인에게 찾아주기 위해 이렇게 왔을 뿐, 당신이야 말로 충직한 저 여인의 개를 이용하여 세간의 관심을 받고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당장 개를 내놓으라!”

“허허허. 그대들의 신을 모시는 곳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이곳을 질시하는 이유는 내 충분히 이해하겠다. 허나 그것은 그대들의 뜻일 뿐, 그대들의 신의 뜻은 아닐 것임을 그대들은 또한 잘 알고 있으리라. 매 순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의 스승 무재(無在) 선사께서 이 지팡이를 내리고 내게 말씀하시길 주인을 섬기는 자들을 때려 내쫓으라 하셨으되 오늘 그것이 헛됨을 알았도다. 주인을 섬기는 그대들은 애초에 매 순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어찌 이 지팡이로 다시 존재하는 자가 될 수 있겠는가? 스승의 죽비를 던져 버리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이제야 알았으니 내 어찌 이곳에 계속 머물 수 있을까?”


여기까지 말을 마친 편재 스님이 은빛 지팡이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 손날로 내려치자 은빛 지팡이는 힘없이 두 동강 나고 말았다. 곧이어 편재 스님은 왼손에 들린 은빛 지팡이의 나머지 조각마저 다른 하나가 굴러 떨어진 곳으로 툭 던져 버렸는데 알루미늄 배트를 갈아서 만들었다던 그 지팡이는 속이 텅 비어 있는, 얇은 종이 위에 은색을 입힌 것임이 드러났다.

DALL·E 2024-06-25 11.58.30 - A detailed and realistic illustration of Master Pyunjae in a slightly side view, focusing on his upper body and face with a stern and resolute express.png


“견성아, 이미 오래 전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서도 나를 염려하여 곁에 머물러 주어 고맙구나. 이제 너의 뜻을 펼치도록 해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은빛 지팡이를 두 동강이 내버린 편재 스님은 개를 향해 깊은 합장을 한 뒤 뚜벅뚜벅 걸음을 내디뎌 사람들이 양쪽으로 물러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산을 향해 걸어갔다. 무엇에도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그의 몸짓과 당당하면서도 날렵한 그의 걸음걸이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상황 전개에 다만 어안이 벙벙할 뿐 그 누구도 소리를 내거나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다. 편재 스님의 마지막 뒷모습이 어둠에 녹아 들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은 남아 있는 개에게로 향했다. 편재 스님이 떠나기 직전에 개에게 남긴 말과 개를 대하는 행동은 필경 사람이 개에게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휘이잉, 가을 저녁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리는 스산한 바람 한 조각이 경내에 들어왔다가 떠나갔을 무렵, 잠자코 있던 개가 편재 스님이 사라진 곳을 향하여 뒷다리로 버티고 서서 두 앞발을 모아 깊이 허리를 숙여 합장하였다.


합장을 마치고 나자 편재 스님이 견성이라고 부른 개는 앞으로 몇 걸음을 내디뎌 돌바닥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구무언 심무상(口無言 心無想)

DALL·E 2024-06-25 12.34.25 - An illustration of a dog using its right front paw to carve a square into a stone floor. The focus is on the dog's paw and the square being carved int.png


본시 절이란 인연의 덧없음을 알고 속세를 떠나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 수행 정진 하는 곳. 편재 스님과 함께 육 년의 세월을 보낸 견성이라는 법명의 개가 어떤 깨달음에 이르렀는지는 오 년이 지난 지금도 명쾌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편재 스님이 남긴 말로 미루어 편재 스님보다 더 높은 어느 경지에 도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스님과 개>라는 다큐멘터리 마지막 부분의 추측이었다.


‘입에는 말이 없고 마음에는 생각이 없다’는 글을 남기고 견성 스님(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는 이 부분부터 개를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이 편재 스님이 간 길을 따라 사라진 후 두 번 다시 그들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에게 그 글에 대한 해석을 들을 어떠한 기회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안타깝다고 나레이터는 말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견성 스님이 사라질 때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칠흙 같은 산의 어둠과 견성 스님의 하얀 몸이 맞닿아 한 점이 되는 순간 일종의 섬광 같은 것이 크게 일어났다가 잦아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겉모습과는 무관하게 진정 깨달은 자에게서만 나타나는 영혼의 빛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DALL·E 2024-06-25 12.40.45 - A dramatic and mystical illustration showing the dog Gyeonseong disappearing into the darkness of the mountains at night. The scene depicts Gyeonseong.png


여하튼 그 후로 견성사는 ‘깨달음의 절’이라 불리며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고, 곧이어 세계 각지의 구도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방문하는 최고의 성지로 각광 받게 되었다. 개의 몸으로 깨달은 자의 반열에 올라선 견성 스님이 땅바닥에 남긴 글자 위로는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고 눈도 쌓이지 않아 방문객들에게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 가끔 머리에 있어야 할 생각이 발로 옮겨간 사람들이 글자 주변에 둘러진 울타리를 넘어서서 글자를 지우려 하다가 스님들에게 발각되어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벌금 액수를 크게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기도 했으나 어떠한 경우에도 글자가 지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자를 훼손하려던 사람들이 두 번 다시는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는 낮은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위대한 사람 스님과 개 스님 두 명을 동시에 사라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세 사람은 견성 스님이 사라지자마자 시주함으로 달려들어 시주함을 깨뜨렸다고 하는데, 그 안에서는 약 20%의 백 원짜리 동전과 10%의 오십 원짜리 동전, 그리고 69%의 십 원짜리 동전과 1%의 국적 불명의 동전과 버스 토큰들이 ‘진(眞)’ 자 형태로 쌓여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두 스님의 도력이 만든 신비라고도 했고, 지워지지 않는 글자와 함께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하늘이 내린 기적이라고도 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사람들 각자의 해석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다큐 프로그램의 연출자는 굳이 프로그램의 말미에 얼굴을 들이밀고 한마디 거들었다.


하여튼 오래 전 몇 안 되는 제자들이 견성사에서 편재 스님의 지팡이에 맞으며 하루를 보내던 시절의 몇 안 되는 신도들과 이제는 깨달음의 절을 지키기 위해 되돌아온 그 시절의 제자들의 증언에 의해 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었는지 훤히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그들은 언제나 넘치는 사랑으로 충만했던 교회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들이 과연 자신들만의 의지로 그날 저녁 견성사에 나타났겠느냐는 의구심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아무도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어쨌든 그날 저녁 이후로 세 사람의 관계는 분명 세 사람만의 특별한 인연으로 더욱 끈끈해지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세간의 추측이었다.


또한, 깨달음의 절 덕분에 사회적으로도 의미심장한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전국의 절에서 개들의 출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또한, 개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의 수와 유기견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전국의 보신탕집들이 급격히 악화된 수익성으로 인하여 앞다투어 문을 닫았다.


부작용으로 견성 스님의 이름을 딴 온갖 상품들이 신비한 효과가 있다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사람들의 지갑을 끊임없이 공략했고, 개를 신으로 숭배하는 몇 개의 사이비 종교로 인한 사회 문제들이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견성사의 기적을 보기 위해 산 아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줄지어 서 있다는 것은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참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소망이 자리하고 있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한 저명한 스님의 의견이 자신이 키운다는 고양이의 사진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입으로는 말을 해서는 안되고 마음으로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어서 다만 책을 출간하였으니 일독을 부탁한다는 메시지였다.

DALL·E 2024-06-25 13.01.37 - An illustration showing a narrow, winding mountain path deep in the Korean mountains with countless people. The path is surrounded by dense forests wi.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