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I

by 오종호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희 앞날을 축하하러 자리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희들 예쁘게 잘 살겠습니다."


시바르는 ‘니들이 예쁘게 살든 추하게 살든 그게 나와 뭔 상관이냐’고 쏘아주고 싶었지만 그런 자신의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입술의 양 끝에 걸린 웃음이 당장이라도 입을 찢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스런 생각이 들게 할 만큼 헌 신랑의 기분은 째져 보였다. 오랜 영업으로 단련된 안면근육 덕이 아니었다면 분명 헌 신랑의 얼굴은 입술을 경계로 두 동강이 났을 것이 틀림없었다.


녀석의 두 번째 결혼식에 비가 지겹게도 퍼붓는 진짜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바르가 결국 예식장을 찾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야근 후 직원들과 술을 한 잔하고 금새 취해버린 탓이 컸다. 10시 이후에는 모르는 전화는 절대 받으면 안 되는 것을, 취한 김에 본능적으로 거래처 전화 받듯이 통화 버튼을 눌러 버린 것이다.


"나, 뻥카다. 잘 지내지?"


"아, 시바르."


녀석의 이름을 듣자마자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었던 삼겹살과 곱창과 막걸리, 소주, 맥주, 그리고 이름 모를 야채들이 자유를 찾아 시바르의 입 밖으로 탈출하려는 순간을 진정시켜 준 것은 몽환적인 여인이 분홍색 장미꽃을 입에 물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 외에도 살아있는 미술관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한 온갖 장르의 그림을 몸에 전시하고 있는, 살짝 헐크를 닮은 것 같기도 한 우람한 풍채의 사나이 덕분에 미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들에게 예기치 못한 탈출을 허락할 뻔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인 시바르의 입안으로 들어간 음식물이 나갈 곳은 오직 활화산의 입구를 닮은 그곳이어야만 했다. 살다 보니 그림이 생명을 구하는 날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 이번에 새 장가 간다. 와서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면상을 한 대 갈길 기회를 준다면 기꺼이 갈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살아있는 미술관 앞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를 쓰는 위험을 굳이 감수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그 대신 시바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청첩장을 문자로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 개 시바르."


전화를 끊고 난 후 0.56초만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보자 저절로 튀어나온 문장이었다. 다행히 미술관이 사옥을 이전하고 난 뒤임을 알고 마음을 놓아 버린 탓인지 시바르의 입술이 벌어진 틈으로 분수를 닮은 음식물의 장쾌한 분출이 장관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마가 훌쩍 벗겨진 시원한 헤어스타일로 여전히 동네 입시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느라 세상물정에 어두운 친구 뻐꺼지가 친히 전화를 주어 뻥카가 재혼할 여자가 자기들과 띠 동갑이라고 했을 때 시바르는 환갑잔치를 벌이고 있는 할머니의 곁에 서 있는 녀석이 떠올라 통쾌한 웃음이 나왔다가 곧 이렇게 외쳤다. "아, 이런 개 시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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