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에 대한 시바르의 거부감이 시작된 것은 그날부터였다.
오푼이는 대학시절 누가 더 많은 F를 받는가, 세숫대야에 담긴 막걸리를 누가 더 빨리 마시는가, 누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속으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술을 마시는가, 누가 여자친구를 가장 늦게 사귀는가 등의 허접한 내기들을 걸고 승자가 되기 위해 악착같이 경쟁을 하곤 했던 다섯 명의 한심한 멤버들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두 학기 연속으로 올 F를 받고 아버지에게 뒈지게 맞았던 시바르가 첫 경기를 이겼다. 자는 도중에도 소주병을 빨대로 물려주면 신나게 홀짝여댔던, 주酒사파 동아리의 회장이기도 했던 주전자가 두 번째 경기, 그리고 세 번째 경기는 소주 한 잔만 마시면 헤어진 첫사랑을 찾아 육체에서 영혼이 바로 이탈했던 뻐꺼지가 압도적인 승자였는데, 666일째 우연히 들어간 음악다방에서 한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하는 바람에 그날 머리와 얼굴을 뒤덮었던 털들을 잘라내느라 소주 한 잔 마시는 것을 깜빡 한 탓에 연속기록이 중단된 아쉬운 사연이 있었다.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까닭은 그 이후로 이틀 만에 다시 소주 한 잔의 기록이 재개되어 333일 동안 이어졌는데 대학원 진학을 핑계 대고 어떻게든 연기시켜 보려고 했던 입대영장이 날아오는 바람에 총 두 시즌에 걸친 천일의 대기록이 하루 차이로 무산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전역 후로는 아마존의 정글 같이 머리와 얼굴을 순식간에 뒤덮던 털들이 오직 뒤통수에만 집결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뻐꺼지는 천일을 채우지 못한 탓과 군대에서 술을 마시지 못한 탓으로 분석했고, 오푼이의 다른 멤버들은 아마도 999일 동안 매일 2회 이상 자행되었을 것이 분명한 자위행위의 후유증이 드디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했었다.
마지막 경기 역시 끝끝내 타인에 의해 성적 흥분을 해소하는 방법을 깨닫지 못하고 숫자에게서 삶의 진리를 발견한 뻐꺼지의 승리로 돌아가 뻐꺼지는 그 이후로 누구도 깨지 못한 오푼이 경기의 유일한 2관왕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뻥카의 말은 99%의 뻥과 1%의 개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오푼이 그룹의 사푼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푼이가 깨닫는 데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장식용으로 달려있는 무거운 머리통의 전면부 하단에 붙어서 화장실 안에서 조차 닫혀 있을 줄 몰랐던 뻥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에 세상사람들은 열광했다. 보험부터 시작하여 정수기, 학습지, 의료기기, 그리고 외제차 영업까지 새로이 시작하는 것마다 뻥카는 첫해에 판매왕으로 올라섰다. 업종을 추가할 때마다 대필작가가 써준 세일즈 실용서만 해도 다섯 권이나 출간되었고, 세일즈 왕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며, 판매비결을 가르쳐달라는 수많은 추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세일즈 스쿨을 열었다고도 했다.
뻥카의 전 부인은 스피치 학원을 운영하던 전직 아나운서 출신의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TV에서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여하튼 아나운서 출신임을 믿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눈부신 미모의 소유자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녀가 결혼 전에 가입한 보험과 구매한 정수기와 미래의 아이를 위해서 다달이 미리 모아둔 학습지, 훗날 몸이 안 좋을 것을 대비하여 간간히 직접 자가 진단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들여놓은, 사전을 찾아보려도 해도 매번 기억나지 않아서 아직도 우리말로 무슨 뜻인지 알아내지 못한 네뷸라이저, 그리고 날씨와 기분에 따라 바꿔 타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특정 브랜드에만 애정을 집중시킬 수는 없는 일이어서 리스로 끊어 놓은 독일제 자동차들을 합하면 웬만한 창고 하나는 너끈히 채우고도 남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스피치 학원의 원장도 반할만큼 주옥 같은 뻐꾸기가 입안에 살고 있었을 정도니 신이 녀석의 입에 축복을 집중시켜 주었음에 분명했다. 한편 뻥카가 세일즈의 신으로 등극하면서 입에 축복을 내려준 신과 동격으로 올라선 다음에 스피치 학원에서는 세일즈 스피치 과정을 추가함으로써 결혼 후 3년 만에 몇 개의 분점을 낼 정도로 성장하였으니 뻥카의 전부인도 결혼전의 투자가 결과적으로는 나름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할 만한 것이긴 하였다.
사단이 난 것은 아무리 먹어도 아프리카 난민의 체형에서 개선될 기미를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오푼이의 후발 멤버 방글라가 뻥카 전부인의 스피치 학원을 불시에 습격한 어느 겨울밤이었다. 온 강의장의 문을 다 열어젖히며 뻥카를 찾던 방글라는 본점이 아닌 분점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다시 재빨리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전원 함박웃음꽃이 핀 여성으로 구성되었다던 수강생들 앞에서 강의가 끝나기 직전의 뻥카의 멱살을 잡는데 아슬아슬하게 성공하고 싶었지만, 텅 빈 강의실에서 혼자 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뻥카를 간신히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살 대신 뼈 중심으로 구성된 상체를 굳이 드러내기 위해서 두꺼운 오리털 잠바부터 신석기 시대에 유행했던 메리야스까지 벗어버린 방글라의 말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나이 사십에 살보다 뼈를 선호하는 좋은 여자를 겨우 만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자꾸 우리의 미래의 대비를 위해 보험에 가입해라, 우리의 미래의 건강을 위해 정수기를 사라, 우리의 미래의 아이들의 선행학습을 위해 학습지를 사라, 우리의 미래의 건강진단을 위해 네뷸라이저를 사라, 우리의 미래의 안전운전을 위해 외제차를 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기가 돌아오는 자동차 보험 가입으로 퉁치려고 했더니 사람 그렇게 안 봤다면서, 어려운 친정 식구들 좀 도와주는 게 그렇게 싫으냐며 그럴 거면 자기와의 결혼은 다음 생에서나 고려해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며칠간 연락도 안되고 해서 찾아가 본 전 애인의 원룸 오피스텔은 창고로 변신해 있었는데 그 창고의 어느 구석에선가 3일은 굶은 듯 보이는 웬 처녀귀신이 불쑥 일어나 자기 멱살을 잡고 뻥카의 이름을 부르더란 것이다. 오빠 왜 이제 왔냐며, 다음엔 뭐 사면 되냐며 말만 하라고, 오빠를 위해서라면 라면 스프를 생쌀에 비벼 먹고 살아도 뭐든 사줄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웃통을 벗고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씩씩거린 방글라에게 뻥카가 던졌던 말은 "졸라게 미안하다" 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가 만나보니 그렇게 좋은 여자는 아니었고, 돈도 별로 없는데다가 낭비벽이 굉장히 심한 여자였다는 것이다. "이게 다 방글라 네가 잘되라고 일이 그렇게 되었나 싶다" 라는 뻥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글라가 분노의 죽통을 날렸는데 비록 주먹에 맞은 턱이 최대 약 1밀리미터 정도만 반대쪽으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 강의장 안을 지켜보는 예정에 없던 관객이 한 명 있었던 관계로 방글라의 일격은 뻥카의 인생에 한 획을 그어주게 되었다.
고저장단의 음률변화가 매우 신속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진행된 뻥카와 뻥카의 당시로서는 현 부인의 대화의 핵심은 그동안 눈감아줬지만 친구의 애인까지 망가뜨리는 것을 보니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자의 입장과 친구 애인인지 자신이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남자의 입장의 충돌이었지만 여자의 오른손이 섬광을 번쩍이고 나서야 남자는 자신이 대학졸업 후 처음으로 핵심에서 벗어난 말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뻥카는 오푼이 모임에 얼굴을 디밀지 않았다. 뻥카가 나오기만 하면 자기가 아프리카 방글라데시로 떠나버리겠다고 방글라가 고래고래 소리질렀기 때문이었다. 방글라의 유전적 모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같은 돈을 내고 음식은 훨씬 적게 먹는 방글라를 포기하고 뻥카를 끌어들이는 것은 나머지 세 명의 멤버들이 용납하기에 힘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