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III

by 오종호

인생에 대한 통찰을 수학을 통해 얻은 뻐꺼지의 뒤통수 색깔이 어느덧 하얗게 물들어가는 동안 주전자는 실내 포장마차로 제법 짭짤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나중에 듣고 보니 날이면 날마다 손님들이 남긴 술이 아까워 마셔 버리다가 결국 술 맛은 그 술이 그 술이라는 비범한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와이프가 어디 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건망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날마다 찾아와 소주 한 병을 시켜 놓고 나서 병뚜껑은 따지도 않은 채 두 개의 안주를 시켜 저녁식사 대신 먹고 갔던, 고급 정장이 잘 어울리던 단골손님도 더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안주는 항상 자기가 만드는 것이었는 데도 말이다.


시바르는 두 학기 연속 올F의 기록을 무마하기 위해 학교를 때려치우고 유학을 갈 생각도 했었지만 성적 취향이 독특한 흑형과 백형들이 자신을 향해 음흉한 시선을 던질 때 그러지 말라고 표현하는 법을 아무데서도 가르쳐주지 않자 결국은 눌러앉고 말았다. 그래도 졸업만 하면 취직할 자리가 넘치던 시절인지라 조그만 무역회사에 들어가 식은땀을 흘리며 뻔질나게 외국을 드나들게 되면서 자신이 흑형과 백형들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성적매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끝내고 사업을 시작해 크게 성공한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는 당장이라도 사표를 동그랗게 말아서 라이징 패스트볼로 사장의 코를 향해 던져버리고 싶다가도, 치킨집과 피자집을 했다가 망해서 빚만 잔뜩 진 선배가 5일 연속 찾아와 어떻게 자기 책상 옆에 목욕탕 의자라도 하나 갖다 놓고 불러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한 이후에는 자비를 들여 책상 옆의 빈 공간들을 큰 화분들로 채워 놓고서 동네 목욕탕은 물론 회사 근처 사우나에도 발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살만하다 싶기 무섭게 신은 뻥카의 입에 내린 축복과 달리 대재앙을 시바르의 뒤통수에 내렸다. 사장이 자신의 절친이라며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인재 중의 인재라고 소개한 뒤 부사장 타이틀을 덜컥 준 것도 모자라 뻐꺼지의 헤어스타일을 그대로 빼다 박은 부사장의 책상을 시바르의 자리 좌현 15도 후방에 떡 하니 배치함과 동시에 자신의 책상을 전진 이동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시바르가 용돈을 아껴 사놓은 화분들을 직원들을 시켜 모조리 자신의 자리 주변으로 옮기게 하는 부사장을 향해 시바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시바르’를 마음속으로 1억 5천만 18회를 외치며 하루를 견디는 것뿐이었다.


그 흔한 외근 한 번 없이 점심식사 자리까지도 자신과 직원들을 따라오는 부사장이라는 거대 재앙 앞에서 시바르는 도저히 인간의 마음으로는 늦은 밤마다 전화를 걸어 술 한잔 하자는 뻐꺼지를 만날 기분을 가질 수 없었는데, 그것을 뻐꺼지는 자신이 소주 한 잔 밖에 못한다고 친구를 외면하는 나쁜 놈이라며 한바탕 욕을 퍼붓고는 했다. 하기사 뻐꺼지가 어찌 몇 십 년 동안 거울에는 비치지도 않은 자신의 머리털이 친구의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상황이 그렇다 보니 베엠베 7시리즈를 끌고 다니며 온갖 유명세를 누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뻥쟁이 뻥카가 시바르의 눈에 예쁘게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분명 먼저 성공하는 놈이 친구들을 이끌어 주자고 혈서를 쓰며 맹세했건만 뻥카는 오푼이 모임에서 방글라가 혈서를 손에 들고 흔든 날에도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주며 자기는 이생에서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써 본 적은 결코 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나는 챙겨간 빨간 약을 재빨리 입에 머금었다가 쓴 것이었지만 뻥카 놈은 과연 어떻게 한 것이었을까?’ 시마르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그에 대한 답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랬으니 친구의 애인인지도 모르고 판매실적의 희생양으로 만들 정도의 뻥카의 화려한 이력에 대해 이미 웬만한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남편이 더 많은 위자료를 지급할 능력이 될 때까지 치밀하게 기다려온 전 부인의 이혼 통보를 받고 뻥카가 가진 것을 거의 잃었을 때 시마르의 통쾌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몸이 안 좋아 소주 반 잔에 취해서 집에 가겠다는 방글라를 붙들어 앉혀 놓고 사이다를 다섯 병이나 주문했던 것이다. 수출실적이 왜 반토막 났느냐는 부사장의 질책에도 자꾸 웃음이 나온 탓에 서류 뭉치에 머리통을 맞기도 했지만 한동안 살만한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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