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8.수지비괘水地比卦>-육삼

윗사람의 부당한 일을 돕지 말라. 무엇이 바르게 행동하는 것인지 생각하라

by 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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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三 比之匪人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乎

육삼 비지비인

상왈 비지비인 불역상호


-비적과 다름없는 사람을 돕는다.

-비적과 다름없는 사람을 도우니 또한 상하지 않겠는가?



육삼의 자리에서 좋은 뜻이 나오기 어렵다고 했지요? 육삼은 실위했고 실중한 상태로 내괘를 벗어나 외괘로 나아가 높은 사람들과 줄을 대고 어울리려고만 하니 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구오는 육이와 정응하고 육사와 비의 관계에 있으니, 상비의 관계도 없는 육삼은 정응하지 않는 줄 알면서 상육과 가까이 합니다. 상육은 '비인匪人'입니다. 괘사에서 말한 '후부後夫'이지요. 흉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육삼이 동하면 내호괘도 감괘가 되니 '비인'을 돕다가 자신도 비인이 되는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감괘에서 비인과 상傷의 의미가 나옵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고 그 문제로 인해 벌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육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죄인 근거를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에서 찾았습니다. 생각 없이, 영혼 없이 상급자가 지시한 대로 행하는 근면, 성실함의 바탕에는 '상급자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음으로써 반대급부로 얻고자 하는 이익'이 동기로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육삼이 동하면 내괘는 간괘가 됩니다. 상육과 사귀려 나아가지 말고 멈추라고 합니다. 외호괘도 간괘입니다. 지괘는 39괘 수산건괘가 됩니다. 수산건괘는 높은 산을 넘었더니 험한 물이 나오는 상황과 같습니다. 점을 쳐서 수지비괘의 육삼을 얻으면 일을 멈춰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험한 꼴을 당하지 않게 되지요.


아울러 수산건괘는 좋지 않은 일, 험한 일을 예측할 수 있는 안목, 그리고 나아가고 싶은 충동과 욕망을 누그러뜨리는 지혜의 소중함을 얘기합니다. 저돌적으로 나아가기는 쉽고, 멈추어 반성하고 성찰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반성과 성찰은 영성靈性의 영역입니다. 주기적으로 교회나 성당, 절에 꼬박꼬박 다닌다고 해서 영성이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재가 불자(在家 佛者)라는 단어가 있지요. 영성을 기르는 일이 특정한 장소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는 순간 세상 도처가 수행의 장소가 됩니다. 그 수행 속에서 '바꿔야 할 존재는 오직 나'라는 자각에 이를 때 비로소 사유가 시작됩니다. 아이히만의 비겁함과는 다른 정직한 사유(sheer thoughtfulness)입니다.


육삼이 동할 때의 외호괘 리괘의 바름을 끝내 지키는 한 어리석은 행위로 인한 흉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키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인 경자, 신축, 임인, 계묘년은 영성을 기르기에 최고의 시기입니다. 종교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의 영역을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이들에게 좋은 시절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안목, 통찰을 요구하는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두피에서 긁어서 쓴 기획서 같은 책들을 멀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영적 지혜가 담긴 책들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일, 사람, 세상을 향한 시야가 조금씩 밝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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