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의 조언에 따라 겸허한 마음으로 분별하며 실천하라.
인생의 행로에는 수많은 함정이 감춰져 있습니다. 위태로움을 감지하려면 절제의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질주의 쾌감에 사로잡히다가는 추락의 쓴맛을 보기 십상입니다. 지켜야 할 것은 어기지 않고, 해야 할 것은 망설이지 않는 분별과 실천의 자세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세상이라는 호랑이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履虎尾 不咥人 亨
이호미 부질인 형
-호랑이의 꼬리를 밟았는데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할 것이다.
<서괘전>에 '物畜然後有禮 故受之以履 물축연후유례 고수지이리, 물질을 쌓은 뒤에 예절이 있으므로 천택리괘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예의라는 것도 생계를 유지할 최소한의 물적 기반이 갖춰져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전에는 그런 마음이 동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나앉게 되어 식구들과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예의 따지고 범절 따져서 언제 한 끼니라도 채울 수 있겠나?' 하고 생각해보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인간이란 물질을 너무 많이 소유하게 되어도 예의를 잃는 동물이지요. 예의 없음을 상황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의란 지킬 사람은 지키고 안 지킬 놈은 안 지키는 것이겠지요. 뉴스에 등장하는 악인 캐릭터들에게 예의를 가르친다고 변할까 자문해 보면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잡괘전>에 '小畜寡也 履不處也 소축과야 이불처야'라고 하여 '소축(풍천소축)은 적은 것이고, 리(천택리)는 거처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불처不處'를 이해하면 됩니다.
<계사전 하> 7장에 '이덕지기야履徳之基也, 이는 덕의 기초다'라고 했습니다. 이履는 '이력履歷'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실천의 개념이 강한 글자입니다. 실천을 의미하는 천택리괘야 말로 덕의 근간이 된다는 말이지요. 그 실천의 형식이 '예禮'가 되기에 천택리괘는 '예절, 분별'을 얘기하는 괘가 되었습니다. 이어 '이화이지履和而至, 이는 조화를 이루면서도 지극하게 하는 것이다', '이이화행履以和行, 이는 조화롭게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천택리괘가 말하는 예절의 의미를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 강렬하게 들어오는 것은 없지요. 논어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했던 공자의 마음이 주역 해설에도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건괘와 태괘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일 높이 있는 하늘과 제일 낮게 있는 못으로 상하의 질서를 밝게 분별해서 행동에 옮기므로 예절이 됩니다"라고 대산 선생님은 얘기했습니다. 대산 선생님의 말을 좀더 들어보지요. 왜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다는 말이 나왔는지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태兌는 후천팔괘방위로 보면 서방西防에 해당하고 사령四靈으로는 백호白虎 호랑이에 해당합니다. 위에 있는 건삼련 하늘괘가 아래에 있는 태괘 호랑이를 밟고 있네요(이호미). 그래도 위에 있는 하늘괘가 굳건하니 사람을 물지 않아 형통합니다."
외괘 건괘는 아버지父, 내괘 태괘는 소녀少女의 상입니다. 어린 딸이 예의 바르게 아버지를 따라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강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아버지라도 무조건 따라야 할 존재는 아닙니다. 옛 시대의 가치관이 녹아 있는 것이지요. 따를 만한 사람을 따르면 됩니다. 그 사람이 부모든 스승이든 선배든 말이지요. 따를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따를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도 모두 각자의 몫입니다. 결국 자기 그릇만큼의 사람만 담을 수 있습니다. 큰 사람이 작은 그릇에 담길 리 없고, 작은 그릇은 큰 사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따를 만한 아버지를 갖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니체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자연을 수정하는 것-훌륭한 아버지가 없다면, 그런 아버지를 자신에게서 만들어내야만 한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임제臨濟 선사는 보다 적극적인 입장에 서 있습니다. "만나자마자 곧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권속을 만나면 친척권속을 죽이라(逢著便殺 逢佛殺佛 逢祖殺祖 逢羅漢殺羅漢 逢父母殺父母 逢親眷殺親眷 봉착편살 봉불살불 봉조살조 봉나한살나한 봉부모살부모 봉친권살친권)"고 말했지요. "그래야 해탈하게 된다. 그러면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될 것이다(始得解脫 不與物拘 透脫自在 시득해설 불여물구 투탈자재)"라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의, 예절은 어쩐지 고리타분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천택리괘는 사실 분별과 실천의 관점에서 읽을 때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괘입니다. 실제로 그런지 차례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