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14.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초구

부질없는 관계와 일을 정리하라.

by 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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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九 无交害 匪咎 艱則无咎

象曰 大有初九 无交害也

초구 무교해 비구 간즉무구

상왈 대유초구 무교해야


-해로운 자들과 엮이지 않는 것은 허물이 아니다. 함부로 사귀지 않고 조심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대유의 초구는 해로운 자들과 엮이지 말아야 한다.



초구는 득위했지만 실중한 위치에 있습니다. 구사도 양이니 정응하지 못하고, 구이, 구삼도 양이니 비比의 관계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무교无交'의 상이 나옵니다. 그런데 '해害'는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주역에서 양은 긍정적, 음은 부정적인 속성으로 쓰입니다. 억지로 관계를 맺기 위해 아무하고나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해로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으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라는 단어의 가치가 변질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라는 표현에서 실감할 수 있지요. 물리적 접촉과 정서적 교감이 근본적으로 배제된 채 단순히 기술적 네트워크 상에서 연결된 존재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을 저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실존을 대신한 '가공된 이미지'가 쏘아 대는 포장된 메시지들과의 영혼 없는 교류에서 부질없음을 느낍니다. 끊은 SNS 안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입니다.


화천대유괘의 초구는 '온라인상에서의 불필요한 연결'에 대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충고와도 같습니다. 허상과 같은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히 끊어내는 것은 허물이 아닙니다. 시간을 아껴 고요하게 자기 자신을 대면하며 수양과 독서로 채우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대상전>에서 공자가 얘기했던 '알악양선'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성공을 선으로, 실패를 악으로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선악의 실체가 매우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이 이미지를 추종한다는 것을 간파한 영악한 자들은 SNS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가꿔 갑니다. 그런 자들과 관계하는 것, 그런 자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간艱'은 그들과 쉽게 관계하지 말고 분별없이 그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는 글자입니다.


'비구匪咎', 즉 허물이 아니라는 것은 초구가 득위하여 양이 양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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