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를 척결하여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라.
벌레들이 탐스럽게 익은 과일을 좀먹어 썩게 하듯 부정부패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활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일궈 온 열매를 독차지합니다. 농사를 망치기 전에 벌레들은 모조리 농약으로 퇴치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부정부패한 자들은 사회와 국가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깡그리 도려내야 합니다. 그들의 입가에서 떨어지는 과즙이라도 핥아먹어 볼까 기대하며 타락한 자들을 편드는 어리석은 자들 역시 벌레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청산의 대상입니다.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고 원형 이섭대천 선갑삼일 후갑삼일
-매우 형통하니 큰 내를 건너면 이로울 것이다. 선갑삼일하면 후갑삼일하게 될 것이다.
<서괘전>에 '以喜隨人者 必有事 故受之以蠱 이희수인자 필유사 고수지이고'라고 했습니다. '기쁨때문에 사람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일이 있기에 산풍고괘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따르는 근거를 기쁨, 곧 쾌락에 두면 그에 따른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법이겠지요.
내괘는 손괘로 바람인데 외괘에 간괘 산이 있으니 바람이 산에 가로막혀 흐름이 차단되었습니다. <설괘전>에 간괘는 열매(간위과라艮爲果蓏)라고 했으니 과실에 바람이 들어 썩는 상이 됩니다. 그래서 고蠱라는 글자가 나오게 됩니다.
고蠱는 벌레 세 마리가 앞다투어 피를 빨아먹는 형상이니 열매가 썩어 벌레가 기어다니는 모습이자, 그 자체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합니다. 욕망의 끝은 부패와 부정으로 점철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왜 괘사에서는 '원형 이섭대천'이라고 한 것일까요? 이 말은 고蠱의 상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긍정하는 표현입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적폐들과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법입니다. 기득권을 누리며 부와 권력을 향유하는 자들은 법과 제도조차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줄 알기에 그들과의 싸움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을 우리의 현대사가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지요.
하지만 이 싸움은 형통한 것입니다. 썩은 사회가 정화되면 가장 큰 혜택이 민중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험한 큰 물을 건너듯 지난한 대결을 하는 것이 이로운 까닭입니다.
'선갑삼일 후갑삼일'은 명리학 기초에 대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명리학에서 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10개로 구성됩니다. 목화토금수의 오행이 각각 양음의 순서로 배치되어 끝없이 순환하며 지속하는 개념입니다.
선갑삼일이란 갑 앞의 삼일이란 뜻이니 신임계辛壬癸이며, 후갑삼일은 갑 다음의 삼일이 되니 을병정乙丙丁을 의미합니다. 신임계의 과정을 잘 거쳐야 을병정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辛은 '완벽'을 상징하는 글자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회에 있어서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辛은 인간이 가지면 고통이 수반되는 글자입니다. 즉, 여기에서는 부정부패가 극에 달아 민중에게 괴로움을 안기는 체제가 됩니다. 신辛은 또한 씨앗의 물상입니다. 도려내야 할 썩은 사회를 씨종자 삼아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사회를 피워 내야 하는 것이지요. 그 과정이 신임계辛壬癸입니다. 씨앗이 수기水氣에 풀어지는 과정입니다. 체제를 혁파하는 것이요,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도기입니다.
그렇게 피어난 갑甲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상징합니다. 을乙은 활력을 회복한 민중이요, 병丙은 부정부패가 사라진 찬란한 문화, 문명사회의 표상입니다. 정丁은 물질문명만의 지속적 확장을 멈추고 정신적 내실을 기하며 문명 사회의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고치고 다듬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고蠱의 사회는 공정하고 정의롭게 변모하며, 인간의 사적 탐욕도 공동체 차원의 건강한 욕망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