彖曰 蠱 剛上而柔下 巽而止蠱 蠱 元亨 而天下治也 利涉大川 往有事也 先甲三日 後甲三日 終則有始 天行也
단왈 고 강상이유하 손이지고 고 원형 이천하치야 이섭대천 왕유사야 선갑삼일 후갑삼일 종즉유시 천행야
-<단전>에 말했다. 강이 올라가고 유가 내려와서 공손하게 그치는 것이 고다. 고가 매우 형통한 것은 천하의 질서가 바로잡히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너면 이로운' 것은 나아가면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선갑삼일 후갑삼일'은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 하늘의 행함이기 때문이다.
산풍고괘는 11괘 지천태괘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강상이유하'는 지천태괘의 초효와 상효의 이동을 얘기합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도 그 기원은 태평성대에서 비롯되는 법입니다.
내괘 손괘에서 '공손하다(巽)'는 뜻이 나오고, 외괘 간괘에서 '그치다(止)'는 의미가 나옵니다. 무조건 길하고 무조건 흉한 것은 주역에 없지요. 중요한 것은 오직 변화(易) 그 자체뿐입니다. 그래서 고蠱의 상황도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치고 공손하게 그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덕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지요.
'종즉유시'를 통해 공자는 '선갑삼일 후갑삼일'이 '신임계갑을병정'의 과정에 대한 얘기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신임계'로 하늘의 시간이 끝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갑으로 시작되어 을병정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순환이라는 것입니다.
象曰 山下有風 蠱 君子以 振民 育德
상왈 산하유풍 고 군자이 진민 육덕
-<대상전>에 말했다.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떨쳐 일으키고 덕을 기른다.
썩은 세상을 바로잡는 것은 뜻있는 소수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민중이 거대한 해일처럼 일어나 광포한 독재자들에게 맞서고, 국정을 농단한 적폐 세력과 무능한 권력자를 일소했듯이 반드시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니었지요. 자신의 목숨보다 민주주의와 인간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 위대한 투사들이 앞장서 시대의 새벽을 향해 거룩한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바람처럼 시민들의 가슴을 뒤흔들었기에 썩어 문드러진 세상의 살갗은 조금씩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군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군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육덕'은 외괘 간괘의 상에서 나옵니다. 위대한 민주투사들이 원한 것은 악을 악의 방식으로 똑같이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듦으로써 선이 악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곳으로 진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이 '덕德'을 길러 주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는 세력의 저항은 끈질깁니다. 공자가 살던 시절의 세상이나 지금이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악의 세력은 늘 고蠱의 사회로의 회귀를 꿈꿉니다. 공자의 시대보다 지금이 나은 근거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존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