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실체를 지혜롭게 인식하라.
九二 幹母之蠱 不可貞
象曰 幹母之蠱 得中道也
구이 간모지고 불가정
상왈 간모지고 득중도야
-어머니의 고를 관장하는 것은 바르게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고를 관장하는 것은 중도를 지켜야 한다.
구이는 음 자리에 양이 있으니 실위했으나 득중했습니다. 육오와 정응의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으로 있어야 할 오효는 음이고 음으로 있어야 할 이효는 양이니 정체성이 서로 바뀐 양상이지요. 대성괘의 육효를 육친적으로 구분하면 오효는 부친, 이효는 모친의 자리입니다. 이를 적용하면 부친은 유약한 존재요, 타락한 상황입니다. 반면에 모친은 지나치게 강해 기질이 남자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모친의 탓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부친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괘가 54괘 뇌택귀매괘입니다. 뇌택귀매괘 초구 효사가 '初九 歸妹以娣 跛能履 征吉 귀매이제 파능리 정길'입니다. 산풍고괘의 구이와 연결하여 이해하면,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처럼 약점이 있는 모친이 다른 남자의 첩으로 가는 상이 되니, 요즘으로 치면 마치 자식을 키우고 가정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래방 도우미가 되어 저녁(태괘兌卦)에 나가 외간남자들에게 웃음을 파는 형국이 됩니다. 모친의 약점이란 무능한 남편이 돈벌이를 못하고 있다는 것, 자식이 있다는 것,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현실적 처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식이 이와같은 상황을 알았다고 해서 원칙을 내세워 모친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인연을 끊어 버리겠다는 둥 강하게 대들 수 있을까요? 역지사지하면 그럴 수 없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역지사지를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처지를 바꾸면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역을 읽는 이유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다음 말보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더 설득력 있게 얘기한 문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공부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확보했다면, 우리는 모친의 고蠱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대신 중도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득得'은 실失의 반대 개념이니 '중도를 잃지 않는 것'은 곧 '중도를 지키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적 욕망이 거세된 존재처럼 부모를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서서히 시들어갈지언정 인간의 정신에는 늘 푸른 피의 청춘이 숨쉬고 있습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