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자세로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라.
막혀 있던 일들이 조금씩 풀려 간다는 느낌이 들면 마음속에서 막연했던 희망이 기쁨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자신감이 붙으니 표정도 밝아지게 되지요. 의식하지 않아도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아 주변으로 확산됩니다. 성과가 나니 저절로 즐겁고 흥겹게 하는 일은 다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호운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오만으로 변질되기 쉽고, 오만은 사람을 경솔하게 만드니 오판하는 경우가 빈번해집니다. 선순환의 고리 중 가장 약한 부분 먼저 순차적으로 끊어져 원활히 돌아갔던 일에 지체와 중단 현상이 발생하고 말지요. 잘 풀릴수록 목과 어깨의 힘을 빼야 합니다. 그 부위에 모이는 힘의 강도만큼 호운의 에너지는 약화됩니다. 역易의 이치는 늘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有凶
림 원형이정 지우팔월유흉
-매우 형통하니 바르게 하면 이로울 것이다. 팔 개월째에 이르면 흉함이 있을 것이다.
<서괘전>에 '蠱者事也 有事而後可大 故受之以臨 고자사야 유사이후가대 고수지이림'이라고 했습니다. '고라는 것은 일인데 일이 있은 후에 커질 수 있기에 지택림괘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림괘는 육음六陰인 2괘 중지곤괘에서 일양一陽이 생겨난 24괘 지뢰복괘로부터 양이 한층 더 자라난(大) 상태입니다.
지택림괘이기 때문에 두음법칙에 따라 임臨이라고 읽어야 할 때도 그냥 '림'으로 표기하는 편이 공부하는데 편합니다.
내괘는 태괘, 외괘는 곤괘로 땅 속에 연못이 있는 상입니다. 연못이 수기水氣를 공급하여 땅을 습윤하게 함으로써 만물을 자양慈養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도록 만들어 주는 모습입니다.
임할 림(臨)은 '어떤 사태나 일에 직면하다, 대하다, 다스리다, 내려다보다, 지키다' 등의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땅 속에 연못이 임하다'나 '연못 위에 땅이 임하다'와 같은 표현은 일상 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臨(임/림)이 포함된 많은 단어를 참고하여 뉘앙스를 익히는 것이 지택림괘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단, 지택림괘는 군자의 도道에 대해 얘기하는 괘이니 이 관점에서 림臨의 여러 의미에 대해 이해해 가야 합니다. 일단 군자란 임할 곳에 임하고, 바르게 임하는 사람임을 염두에 둔다면 길을 잃지 않게 됩니다.
지택림괘는 앞에서 11괘 지천태괘 구삼을 공부할 때 한 번 등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천태괘 구삼효가 동하면 지택림괘가 되니까요. 그때 지택림괘는 대진大震의 상이라고 했습니다. 1효와 2효, 3효와 4효, 5효와 6효를 각각 하나로 보면 진괘(☳)의 상이 됩니다. 큰 진괘의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진괘는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을 뜻합니다. 대진이니 화창한 봄날, 많은 사람이 모여 분주히 움직이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지택림괘가 계절적으로 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 겨울을 끝내고 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축월(음력 12월)입니다. 인간의 둔한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혹독한 겨울을 마감하고 새로운 생기를 피우려는 자연의 에너지는 엄청난 에너지입니다. 축월은 얼어붙은 땅을 장악하고 있던 음기를 몰아내기 위해 땅속 깊은 곳에서 태동한 양기陽氣에 힘을 더하는 시기입니다. 마치 보통 강도의 두 배로 우레가 치는 듯한 강력한 에너지의 움직임이 땅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택림괘가 축월을 상징하고, 괘상이 대진大震의 모습인 이유입니다.
지택림괘의 상은 또한 땅을 판 곳에 물이 고여 있는 모습, 곧 저수지와 같습니다. 저수지에 빗물이 담기고, 지하수가 모여들어야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있어야 할 곳에 물이 (임해)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에 순응하여 살 수 있게 하는 바탕과 같습니다. 먹거리를 기르는 저수지의 물처럼, 군자의 도도 사람을 기르는데 근본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지우팔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육양六陽에서 일음一陰이 피어나 성장하다가 육음에 이르고, 육음에서 다시 일양이 일어나는 모습을 이해하기 쉽도록 12개월의 흐름을 정리했습니다. 양기가 가득한 사월巳月은 음력 4월이고 사오미(음력 4, 5, 6월)는 여름에 해당됩니다. 신유술(음력 7, 8, 9월)은 가을, 음기가 가득한 해월亥月은 음력 10월이고 해자축(음력 10, 11, 12월)은 겨울, 인묘진(음력 1, 2, 3월)은 봄에 해당됩니다.
세로로 위치한 두 괘는 계절적으로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있습니다. 명리학적으로 지지충地支沖이라고 불리는 관계입니다. 각각 사해충, 자오충, 축미충, 인신충, 묘유충, 진술충으로 불립니다.
'지우팔월'의 팔월은 음력 8월을 뜻하는 유월酉月이 아닙니다. 대산 선생님은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지뢰복괘로부터 여덟 번째 달이 천산둔괘가 되어 군자가 소인을 피해 물러가는 것이 되니 이것이 바로 '지우팔월유흉至于八月有凶'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이 관점에 동의합니다.
명리학적으로 지뢰복괘에 해당하는 자월子月의 지장간에는 임계壬癸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계수癸水가 일양一陽의 시생始生을 의미합니다. 일양이 시생하여 자라는 지택림괘 축월의 작용력을 미월 천산둔괘가 정면으로 맞부닥칩니다. 미월未月의 지장간에는 정을기丁乙己가 들어 있습니다. 흔히 수 기운을 음, 화 기운을 양이라고 천편일률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계수는 발산의 에너지요, 정화는 수렴의 에너지로 계수는 양의 성질을 띠고 정화는 음의 성질을 갖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지요. 그래서 축월 지택림괘에서는 양기가 자라고, 미월 천산둔괘에서는 음기가 성장합니다. 자연은 인간이 감지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서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력 6월의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 음기는 자라고 있고, 음력 12월의 얼어 죽을 듯한 추위 속에서 양기는 커지고 있습니다. 미리 움직여 계절의 흐름을 서서히 섞음으로써 만물의 적응을 돕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자연의 일을 방해해 왔기에 우리는 봄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여름과 겨울로 양분된 계절 속에서 인류 문명의 토대인 농업이 버텨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돈이 최고야"라고 떠드는 소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지택림괘를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군자의 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