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달리기 시작한 작은 말II

by 오종호

햇살이 세상을 위해 눈부신 아침을 선물해 준 5월 하순의 어느 날, 목장을 방문한 경주마 팀은 가족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트라이엄프의 마음이 담담해질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특히, 목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무려 삼십 분 이상이나 무슨 말인가를 나누고 서 있던 트라이엄프와 숏의 모습은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태양도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 오기 시작하는 시각, 숏만은 점심도 거른 채 트라이엄프가 트럭에 실려 사라진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 달이 조금 더 지나고 지루한 여름장마가 여전히 추적추적 비를 뿌리던 날, 주인은 몇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나 목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때로는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 나무 아래 비가림막이 씌어져 있는 벤치에 앉아서는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숏에게는 걸음을 걷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기분 좋은 신선한 풀과 흙 내음을 맡지 못한 날이었다. 주인이 마구간에 가둔 채 내보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식사도 주지 않고 말이다. 풀이 죽어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는 숏의 얼굴을 건너편 칸에서 어미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모든 말이 시원한 비를 맞으며 밖에서 뛰어 놀고 있는 동안 어미와 숏은 그렇게 어두운 마구간에서 하루 종일 굶주린 채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다 밖이 사람들 발자국으로 시끌시끌하다 싶더니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숏의 어미의 고삐를 잡더니 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숏이 갑자기 씩씩대며 앞발로 마구 땅을 파고 문에 몸을 부딪히는 등 난폭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 지 엄마 팔리는 줄 아나 보네. 이것도 못할 짓이여."


하얀 수염이 이리 저리 거칠게 얼굴의 아래를 뒤덮고 있는 나이든 말 상인이 숏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안됐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어미는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면서 반항하는 대신 자꾸만 고개를 돌려 숏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괜찮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는 것이었다. 어미가 멀어져 문 밖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숏은 거의 폭발 직전의 울부짖음과 함께 마구간의 문을 부실 듯 온몸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커다란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닫힌 후에도, 어미를 실은 트럭이 떠난 지 한참이나 지난 후에도 숏의 울음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밤이 되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빗발은 본격적으로 사납게 지붕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숏의 구슬픈 울부짖음은 하늘에서 쏟아 붓는 굉음과 뒤섞여 마구간에 들어찬 모든 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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