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22.산화비괘山火賁卦>-괘사

억지로 과장하여 꾸미지 말라.

by 오종호


22.png

우리는 사물과 사람의 실체를 부풀리는데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광고와 마케팅, 홍보, 브랜딩 등은 상품의 사용가치와 사람의 존재가치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지요. 사람들의 욕망을 최대한 자극하는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욕망의 자극제에 휘둘릴수록 사물과 사람의 본질로부터 멀어진 채 허상에 대한 갈증만 심화될 뿐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오직 내면을 꾸미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외부의 치장을 필요로하지 않는 내면의 미美를 확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나로서 말이지요.



賁 亨 小利有攸往

비 형 소리유유왕


-형통하다. 나아가면 작은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서괘전>에 '嗑者合也 物不可以苟合而已 故受之以賁 합자합야 물불가이구합이이 고수지이비'라고 했습니다. '합(화뢰서합)은 합하는 것이다. 물이 단지 합하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비(산화비)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산화비괘는 '꾸밈', '장식'에 대해 얘기하는 괘입니다. 물과 물은 함께 있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더 빛나는 법이지요.


산화비괘는 산 아래에 불이 있는 상입니다. 그냥 산이 아니라 불붙은 산입니다. 단풍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가을산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단풍은 지고 알록달록했던 산의 빛깔은 무채색으로 바뀌어 가지요. 사람의 외모, 허명虛名, 허세가 이와 같습니다. 꾸밈은 진실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겨울산의 담백한 멋을 아는 사람은 온갖 이력과 감투 리스트를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달아 두지 않습니다. 인위적 꾸밈 대신 내면을 수양하는데 집중합니다.


리괘에는 '소식', '문서'의 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화비괘에는 산 아래에서 등불을 밝히고 도를 닦는 물상이 나옵니다. 위에서 말한 내면의 수양과 일맥상통합니다. 불빛이 산에 가로막혀 멀리 나아가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내면을 갈고 닦는 것, 공부하는 것의 본질은 자신을 포장해서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수양과 공부 자체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깊은 배움은 외면한 채 물질과 명예를 얻기 위한 장식용으로 학위를 따고 열심히 자기 PR에 나서는 방식으로는 말년에 겨울산 같이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진솔한 꾸밈이라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략-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493371365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