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체하다

by 오종호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울음소리, 지교를 잃어버렸다는 말. 거래처 선배와의 저녁 식사를 위해 막 식당에 도착한 나는 양해를 구한 후 정신 없이 귀갓길에 올랐다.


김밥가게 밖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울타리에 지교를 묶어두고 들어간 아내가 계산을 마치고 돌아봤을 때 행인들의 괴롭힘을 당하던 지교는 몸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줄이 풀리자 정신 없이 달아나기 시작했고, 행패를 부리던 인간들을 피해 차가 가득한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사라진 지교를 아내는 끝내 찾지 못했다. 하필이면 늘 두 개씩 목에 걸고 다니던 인식표까지 채우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일이 벌어지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식구들이 총 동원된 지교 찾기의 시간 내내 겨울의 어둠은 차가운 밤공기를 거리에 쏟아붓고 있었다. 지교와 함께 산책하던 골목, 공원, 산을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렸다.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아내를 딸 곁으로 돌려보낸 후 나는 지교가 사라진, 지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장소들을 미친 듯이 수소문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어느 빵 가게 앞에서 한 시간 전에 지교와 닮은 개가 지나갔다는 행인의 말을 듣고는 모든 임의 수색을 중단하고 그 앞에서 머물기로 결정했다. 시간은 밤 10시 30분. 빵 가게가 위치한 작은 골목 네거리의 가로등 아래에서 나는 하염없이 지교를 기다렸다.


지교는 오지 않았다. 지교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 깊어갈수록 내 안에서 끝 모를 회한과 자책이 빗발치듯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딴엔 힘들게 안내견 훈련을 받으며 고독한 수행자와 같은 삶을 살아온 지교에게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선사한다는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지교의 습성, 삶의 패턴을 모르는 누군가가 지교를 억지로 끌고 갔다면 지교가 얼마나 불행한 삶에 처하게 될 것인가. 흙과 풀 없이는 용변조차 보지 못하는 지교, 한없이 순하기만 한데도 덩치에 사람들이 겁을 먹고 해하지는 않을까…’ 온갖 좋지 않은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저녁식사도 거른 채 식구들과 함께 단잠을 잘 때가 훨씬 지나버린 시각에 공포와 추위, 외로움으로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닐 지교의 환영이 쉴 새 없이 눈 앞에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진 삭풍이 뼈 속을 파고드는 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제발 나타나기를, 제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이 아빠의 곁으로 돌아오길 나는 투명한 밤하늘 저편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나 지교는 나타나지 않았고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부지런한 사람들이 하나 둘 출근 대열에 나서기 시작했다. 길고 고통스러운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덟 시가 지나고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 들었을 무렵 경찰차가 다가와 멈추고 젊은 경관 한 명이 내려 내게 다가왔다. 밤새 그러고 있었으니 사람들의 눈에 수상하게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내 얘기를 들은 경관은 볼만했을 것이 분명한 내 얼굴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더니 잠시 나를 위로하고는 곧 자리를 떴다. 그러자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샜을 아내가 저만치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의 밝음이 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서며 지교의 부재를 실감하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터져 눈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지교의 부재 앞에서 끝 모를 절망이 온 식구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지교 찾았어, 찾았어, 찾았어!”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아내는 큰 울음을 터뜨리며 다가와 소파에 엎어진 채 괴로워하고 있던 내게 소리쳤다.


양천소방서에 차를 대고 입구를 향해 걸어가자 소방관 한 명이 지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밤새 지교를 기다릴 때의 슬픔도, 아내의 죄책감도, 무엇보다 태어나 처음 만난 두려움에 떨었을 지교의 공포도 모두 봄 햇살을 만난 눈처럼 녹아 내리고 있었다.


지교의 가족임을 확인 받느라 실내에서 잠시 머무르는 동안 지교는 한시도 쉬지 않고 내 얼굴을 핥으며 품에 안겨 왔다. 집에서 챙겨온 사료를 꺼내 주자 지난 저녁부터 꼬박 굶은 지교는 숨쉬는 것도 잊은 채 삽시간에 먹어 치우고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니까.”

“밤새 잠도 안 자더라구요. 뭘 먹는지 몰라서 먹을 것도 못 줬는데...”

“소변도 안보고 계속 기다리기만 하더라구요.”


지교가 기특한지 소방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칭찬을 했다. 나는 그런 그들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고마움을 인터넷에 남긴 기억이 난다.


집에 도착한 지교는 정신 없이 나를 잡아 이끌었고 나는 지교와 함께 전속력으로 공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밤새 참았던 녀석에게 드디어 용변의 신호가 온 것이었다. 나의 귓전을 파고드는 겨울바람이 여름해변의 미풍처럼 상쾌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펄럭이는 지교의 귀와 헐떡이는 혓바닥도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이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꿈나라 산책길을 제외하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내 코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눈이 되어

길을 이끌고

옆에 머무는 훈련을 받았다.


코를 파고드는

한낮의 열기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침묵,

지독한 고요.


누군가의 어둠 안에만 머물기에

나의 빛은 너무 밝았다.


나는 뛰고 싶었고

나는 웃고 싶었고

나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가끔 풀과 나무들과 코끝으로 인사하고 싶었다.


하늘을 보며 구름과 대화하고도 싶었다.


어느 날 찾아온 낯선 만남과

길었던 첫날밤의 짙은 어둠,


그리고

바다를 보았고

해변을 달렸고

차를 타고 여행을 했다.


태어나 가장 추웠던 하룻밤을

가족을 찾아 거리를 헤매다

아침에 만났을 때

나는 알았다.

누군가 나의 어둠을 함께해 주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채우게 되어 있던

어둠의 의미를.


그 후로 많은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아팠다,

난생 처음...


기운이 빠져 나간 자리에

이내 스며들어 차오른 것은

부드러운 에너지.

나를 데워준 따뜻한 포옹들, 입맞춤들.


사랑을 과식하다

사랑에, 체하다.


콧속으로

사랑이 밀려온다.


가족이 내 곁에 온다.


사랑에 체했을 땐 사랑이 약이라며...


-어느 날, 새근새근 잠든 지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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