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전통시장이 있다. 시장 남문 입구에 50대 후반의 부부가 운영하는 과일가게가 있다. 어느 때부턴가 그 가게에 정을 붙인 지교는 평일 밤이나 휴일이면 나를 보채 시장으로 간다. 몇 년이 훌쩍 지났다. 알은 체를 해 주는 시장 상인들과 인사하며 복잡한 인파를 지나 과일가게에 도착하면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반기고 예뻐해 주는 사장님과 사모님 앞에 앞발로 버티고 서며 지교는 바나나를 내놓으라고 헐떡거린다.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동네 구석구석을 익히던 초기에 지교는 과일가게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고, 오랫동안 반려견을 키우던 사장님과 사모님은 지교에게 바나나를 주기 시작했다. 섬유질이 많아 쾌변에 좋은 바나나를 집에서도 자주 먹이던 터였다. 의례 바나나를 먹을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간 과일가게가 닫혀 있거나 바나나가 모두 떨어져 먹을 수 없을 때면 급 실망하여 고개를 떨군다. 그럴 때면 산책 시 휴대하는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어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여름에는 바나나를 사서 냉동실에 통째로 얼려 두고 아침을 제외한 짧은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몇 조각 썰어 아이스크림처럼 준다. 언뜻 딱딱할 것 같지만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부드럽게 녹기 때문에 더위를 식히는데 그만이다. 미리 직접 먹어보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식탐이 많은 지교에게 시장은 보물섬과 같다. 사정없이 코를 공격하는 온갖 냄새의 향연에 한동안 지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끔 순대며 내장 삶은 것을 사준 나의 잘못이 컸다. 간이 배인 음식은 반려견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내장만 조금씩 준다. 다행히 지교는 시장에서 다른 음식에 대한 관심을 끊고 바나나만 먹는다. 언제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주는 대로 맛있게 먹는다. 건강하다는 증거다.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은 건강하다.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하고자 하는 바, 해야 할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먼저다. 음식에도 사랑을 가득 담아 주어야 한다. 사랑 받는 반려동물은 표정부터 다르다. 지교에게서 매번 놀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사랑을 주려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보다 반려동물이 나은 지점이다. 반려동물은 사랑을 받으면 반드시 몇 배의 사랑으로 갚을 줄 알뿐더러 늘 먼저 다가와 사랑을 베푼다. 평범한 대다수의 인간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바나나에 대한 지교의 소박한 집착을 볼 때마다 늘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인간의 탐욕을 반성한다. 시장의 과일가게를 향해 지교와 앞으로도 많은 날을 뛰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