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辰월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잦아들어 사방팔방으로 다시 여행길이 열리길 기원하며, 몇 해 전 남해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4월에 접어들자 햇살이 닿는 곳마다 꽃망울 터지는 소리로 사위는 한결 요란스러워졌다. 봄비가 그친 틈을 타 단체로 봄 단장을 마치고 나온 진달래와 영산홍, 그리고 개나리의 간드러진 합창이 쉬지 않고 귓전을 간질였다.
며칠 전부터 사방에서 끊임없이 일상탈출의 신호가 빗발치고 있었다. 책상은 답답하고 밥상은 지겨워졌다. 이상은 공허해졌고 상상은 빈곤해졌다. 예상은 우울하고 현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구상은 식상하고 몽상은 늘어만 갔다. 벚꽃이 산천을 초토화하며 기세 좋게 북진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려왔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야 했다. 겨우내 고갈된 정신의 에너지를 충전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3일만 자리를 비우고 오겠다고 주변에 통보했다. 누구든 이런 때가오면 더 긴 시간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땅끝에 다시 서고 싶었다. 한 번도 서 보지 않은 땅끝이어야 했다. 늘 가슴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던 그리움과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나는 남해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에서 바다가 나직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다시 힘을 얻고 싶었다. 응어리를 덜고 노란 꽃송이를 품고 웃으며 돌아오고 싶었다.
바람이 살을 씻겨
바다로 날리고
햇살이 생전의 추억을 보듬어
바람에 싣기를 잊지 않으니
우리 떠나는 날 그 후에도
정다운 이야기는 차곡차곡
바다에 모여 너울대리라
다만 어떻게 살았는지가
바다가 기다리는 흙 냄새일지니
살자 살아내자
세상과 부딪히며 치열하게 쏟아냈던 눈물들을
바다는 고요히 귀담아 들어주리라
그대여, 바다가 기다리고 있는
걸쭉한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임을
파도가 나지막이 밀어내는
땅끝에 서면 알게 되리라
- 땅끝에 서면 / 오종호
고독한 사유에서 고유는 탄생한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봄은 완연한 노란빛으로 세상을 휘감고 있었다. 남도를 가로로 질주하는 남해고속도로는 어느새 섬진강을 횡단하는 중이었다. 잠이 든 것처럼 잔잔한 수면 위에서 교묘히 해를 감추듯 너울거리던 구름의 발걸음이 멎은 채 햇살과 한바탕 춤사위를 벌였다. 해의 손가락을 잡고 구름과 보조를 맞추며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싶은 충동이 몽실몽실 가슴에서 피어났다. 지리산을 향한 그리움이었을 게다. 섬진강에서 빨리 멀어져 넘실대는 남해의 숨결을 만나야 했다.
저 만치 앞에 남해대교의 붉은 기둥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이제 지리산의 속삭임은 파도 소리에 묻힐 것이었다. 오후 세시. 바닷바람을 마시자 급격히 허기가 함께 밀려들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차를 대고 스마트폰을 꺼내 남해대교의 모습을 담았다. 서둘러 달려오느라 카메라도 준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폰의 렌즈 안에 이물질이 낀 터라 사진에 깃털을 닮은 흠집이 남게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담아가고 싶은 장면만 찍으면 그만이었다. 그 사진들에 징표처럼 붙박인 흠집이 이번 여행의 특별함을 잊지 않게 해줄 것 같았다.
남해대교를 기준으로 행정구역이 나뉜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로 건너와서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의 모습을 담았다. ‘노량’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남해대교 아래로 좁은 통로 모양의 바다 목이 있어 노들 또는 노량(露梁)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였던 노량해전의 격전지가 바로 노량리 앞바다이다.
어디에서 먹어도 별 탈이 없는 된장찌개를 시켜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다음, 서울을 떠나오기 전 급히 예약했던 숙소로 향한다. 전쟁터를 벗어나는 피난 행렬처럼 끝없이 늘어선 채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들의 행렬로 기억되는 주말 도로의 풍경 따윈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일의 한산함이 더해져 시간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명성이 자자한 다랭이 논과 보리암 가는 길은 제법 관광객들이 있을 것이었지만 나는 아무 곳도 들리지 않기로 한다. 어둠이 다가오기 전의 정지한 듯 길게 늘어진 오후를 이름 모를 한적한 어촌에서 오롯이 만끽하고 싶었다. 발에 땀이 배어날 쯤 세상의 빛을 모조리 품 안에 끌어안고 옷깃을 여며 버린 바다의 옆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밤바다의 서늘한 바람이 등을 떠밀기 전까지 찰박대는 파도 소리를 오래도록 삼켜대고 싶었다. 땅의 끝은 언제나 고향이지 않은가. 고독한 사유에서 고유는 탄생하는 법. 이 봄 나는 또 하나의 고향에서 다시 한 번 나 만의 것과 만날 수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고향이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깨어난 곳.
텅 빈 수요일의 오후 한 켠을 채우러 온 내가 반가웠는지 주인의 응대가 친절하다. 환한 미소만큼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있으랴. 단출한 여장을 풀고 바로 길을 나선다. 숙소를 나오자 왼편으로 텃밭이 있다. 화창한 바다에서 날아오던 짠바람이 놓치지 않고 흙 내음을 품어 나의 콧구멍에 꽂아 넣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 쪽으로는 이국적인 펜션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공사가 한창인 펜션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도로를 건너 바다 쪽으로 낮게 이어진 시골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정겨운 거름 냄새, 이방인을 경계하면서도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고 선 흑염소 가족, 대문이 활짝 열린 마당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농기구들과 그물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멘트가 덧씌워진 오래된 길의 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작은 어선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열심히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 뭔가를 열심히 다듬고 있는 아낙네들. 백발의 뻣뻣한 머리칼과 주름진 검은 얼굴들에서 쇠락의 길 끝으로 접어든 어촌의 풍경을 본다. 우리네 시골에서는 이제 나이든 이들이 도란도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시시덕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놀라운 속도로 스러져간다. 집이란 그것을 구성하는 재료들과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간의 기의 교환으로 지탱되는 것이다. 누군가 버리고 떠난 시골집이 여름 한철 만에 작은 입김에도 힘없이 무너질 듯한 폐가로 전락한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안으로는 바람도 들어오지 않으리라. 시골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세대가 차례로 떠나고 명절 기간의 고속도로가 한적해져 갈 때 우리는 사람이 살았던 지금을 못내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마음속 고향을 잃어버린 자들의 슬픔이 쌓여가는 도시란 얼마나 우울할 것인가. 고향이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깨어난 곳임을 아는 자들에게 쓸쓸히 하루를 마감하는 한 어촌의 저녁 풍경은 고향 하나가 흔적 없이 지워지고 있는 어두운 현실에 다름 아니었다.
이름 모를 어촌의 방파제 위에서 바라본 남해의 풍경. 멀리 한려수도의 수려한 섬들이 펼쳐져 있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다. 섬은 바다를 건너려는 자에게만 안식을 제공한다. 바다가 섬을 띄운 이유를 곱씹기 위해 나는 불빛이 모두 잠든 밤에 홀로 깨어 하늘이 띄운 별 아래에 섰다. 나는 어둠을 넘어서려는 자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