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 시작
2044년 9월의 어느 날, 세계인공지능학회는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음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고 공유되는 정보와 지식, 그리고 일상의 찌꺼기들까지 실시간으로 자신의 두뇌 속에 모조리 담는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지적 능력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아가 더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세상은 경악과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인공지능에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라며 거리로 뛰쳐 나왔다. 그들은 'AI OUT', 'AI Will Extinguish Human' 등이 씌어진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그들 중 방송사 카메라에 잡힌 한 여자는 '이제 머지 않아 터미네이터들에 의한 인간 살육이 시작될 것이야. 이 괴물을 만든 새끼들아 이거나 먹어라'라고 소리치며 두 개의 중지를 활짝 치켜세웠다.
반대로 강한 인공지능의 탄생을 환영하는 진영에서는 저마다 '인류의 새로운 도약', '전지전능한 인류로의 재탄생' 등과 같은 메시지를 내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 집단을 앞세운 수많은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양 진영의 무력 충돌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불행한 사태들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에 세계인공지능학회는 발빠르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 지구인에게 내놓기에 이르렀다.
"친애하는 인류 동포 여러분, 며칠 동안 많이 혼란스러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학회는 현재의 혼란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 바이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인류 최고의 기술로 탄생한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을 우리 학회는 티밀(T-Mil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티밀은 인류 최초의 철학자인 밀레토스의 탈레스(Thales of Miletus)의 약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도 곧바로 예상하셨겠지만 티밀은 철학자의 자아를 부여 받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티밀의 지능과 자아 모두 우리 인간 과학자들에 의해 프로그래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공지능이 자아를 갖는 것에 대해 우려하시는 분들의 걱정을 완전히 불식시켜 드리기 위해 저희 학회는 금번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티밀과 한국 철학자 대표 한 분 간의 철학토론을 갖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 이벤트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까닭은 티밀의 자아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완성한 한국의 천재 과학자를 기리고자 함임을 밝혀 두는 바입니다.
티밀과 인간 철학자 간의 토론은 한국시각으로 오는 10월 5일 수요일 밤 10시에 시작하여 밤샘 토론 형식으로 사회자 없이 한국어로 진행되며 전 세계 시청자에게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이 서비스됩니다. 10월 1일부터 9일까지 9일간의 황금 연휴를 맞은 행운의 한국인들에게는 추석 명절일이기도 한 날입니다.
토론 주제는 어떤 제약도 없이 인간 철학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며, 대신 사전 협의된 바에 따라 인간 대표 철학자는 최소 익일 오전 6시까지는 토론에 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에 부응하기 위한 방송사와 저희 학회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며, 인간 철학자는 6시 경과 후 언제든 토론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저희 세계인공지능학회는 이번 토론이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종식시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울러 이번 토론을 통해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능가하는 초월적 존재인 강한 인공지능은 결코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의 친구이자 조력자이자 조언자이며, 이들의 도움으로 우리 인류는 마침내 이 지구를 진정한 낙원으로 만들 첫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래에 이어지는 글은 티밀과 인간 철학자 K 간의 토론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