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41.산택손괘山澤損卦>-단전과 대상전

by 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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彖曰 損 損下益上 其道上行 損而有孚 元吉 无咎 可貞 利有攸往 曷之用 二簋可用享 二簋應有時 損剛益柔 有時 損益盈虛 與時偕行

단왈 손 손하익상 기도상행 손이유부 원길 무구 가정 이유유왕 갈지용 이궤가용향 이궤응유시 손강익유 유시 손익영허 여시해행


-<단전>에 말했다. 손은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으로 도가 위로 행하는 것이다. 더는 데 믿음이 있으면 매우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바르게 하여 나아가면 이롭다. '어느 때에 갈 것인가, 두 개의 제기로 충분히 제사 지낼 수 있을 것이다'에서 두 개의 제기를 쓰는 것도 응당 때가 있는 것이고 강에서 덜어 유에 더하는 것도 때가 있는 것이니, 손익과 영허는 때에 따라 함께 행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는 믿음과 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부有孚'와 '유시有時'이지요.


아래에서 덜어서 위에 더하는 일에 위정자들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백성들의 불만이 생깁니다. 공적 업무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세금을 사용하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지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두텁고 정부가 그 신뢰에 부응하여 공명정대한 행정에 충실할 때 모두가 두루 혜택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공자의 인식은 당연히 타당합니다.


이어서 공자는 '덜고 더함(손익)', '채우고 비움(영허)'에는 다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재해로 인해 국민이 고통 받을 때는 나라의 곳간을 열어 아래에 더해 줘야 하는 것이지요. 동일한 지원이라도 공무원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시의적절함에 큰 차이를 보이기 마련입니다. 재난지원금과 재난기본소득이란 용어에는 국민을 지원 대상으로 보는 시각과 수혜 주체로 보는 시각이 각각 담겨 있습니다. 기재부 공직자들이 후자의 인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지원 또는 수혜의 범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객관성이 결여되기 쉬운 '선별' 방식을 고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자가 말하는 때를 맞추는 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요, 정책의 효과를 신속하게 제고하면서도 재난 종식 후 별도의 융통성 있는 정책을 통해 '손익영허'의 균형을 얼마든지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를 국민의 입장에서 결정하지 않는 것에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 않기 위한 의도가 있을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논리가 결여된 근거들을 앞세워 재난기본소득 액수를 최소화하는 것도 '이궤응유시'의 조언에 어긋납니다. '두 개의 제기'만으로 소박하게 할 때가 있는 것이요, '여러 개의 제기'로 정성을 다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아무리 변명거리가 있을지라도 공직자들은 코로가19가 초래한 재난으로부터의 타격을 가장 덜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입안한 정책에 대해 그들이 앞세우는 말에는 엘리트의 권위 의식이 묻어납니다. 자기들만 국가 재정을 염려하고 있는 듯이 생색을 냅니다. 국민 입장에 서서 '때'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지요. 공자의 시대나 지금이나 관료들이 큰 문제입니다.




象曰 山下有澤 損 君子以 懲忿窒欲

단왈 산하유택 손 군자이 징분질욕


-<대상전>에 말했다. 산 아래에 못이 있는 것이 손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화를 다스리고 욕심을 그친다.



忿은 곧 화火의 기운입니다. 분노가 치밀 때는 못의 물로 불을 가라앉혀야 하지요. 욕심이라는 물이 가슴이라는 저수지를 넘쳐흐르면 태산을 가져와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산택손괘의 괘상을 통해 군자는 분노와 욕망의 절제를 배운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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