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삶이다. 고생스러워도 바르게 살아갈 때 길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여행자입니다. 우리의 여행이 경이와 동시에 권태로 가득한 까닭은 그것이 우리 여행의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떠나온 곳을 알지 못하고 돌아갈 곳을 모르는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생존법을 익혀야 하지요. 생존법의 반복적 실천은 저마다의 생활 방식으로 굳어집니다. 개인의 생활 방식이 모여 사회의 생활 양식이 되고 다시 사회의 생활 양식이 쌓여 문화를 이룹니다. 문화라는 틀 안에 욱여넣어진 채 흐름을 멈춘 여행은 점차 경이로움을 죽이고 권태로움을 낳지요. 권태를 경이로 바꾸기 위해서는 여행의 본질을 사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정성과 불편함을 삶 안으로 기꺼이 끌어들여 자신만의 인생 여정을 기획하고 실행할 자유의 대가로 감수하는 것, 그리고 그저 길 위의 경험 자체를 즐기는 것, 이것이 여행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지를 선정하듯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시작해야 합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나이와 돈 따위의 그럴듯한 핑계를 모두 날려 버리고 말입니다.
旅 小亨 旅貞 吉
려 소형 여정 길
-조금 형통하다. 나그네가 바르게 한다면 길할 것이다.
<서괘전>에 '豐者大也 窮大者必失其居 故受之以旅 풍자대야 궁대자필실기거 고수지이려'라고 했습니다. '풍(뇌화풍)은 큰 것이다. 큰 것이 궁극에 이르면 반드시 거처를 잃기에 려(화산려)로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화산려괘는 공자가 직접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점을 쳐서 얻은 괘로 객관적 해석을 위해 풀이를 제자에게 맡겼다는 괘로 알려져 있습니다. "덕을 갖추었으나 등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제자는 말했고, 점괘대로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유랑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공자에게 다른 사람이 뽑아 주었다고 알려진 괘는 22괘 산화비괘입니다. 우리가 이미 공부했듯이 큰 성취와는 거리가 있는 괘이지요. 등용되기 위해 억지로 꾸미지 않았던 공자의 삶과 잘 어울립니다. 간괘와 리괘로 구성된 두 개의 괘를 얻은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화산려괘는 간괘 산 위에 리괘 태양이 있는 상입니다. 동산에서 떠올라 서산으로 지는 해처럼, 인생이란 이 세상에 와서 잠시 나그네의 삶을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는 여정에 다름 아닙니다. 누구의 것도 예외일 수 없지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태양이 산에서 올라와 산으로 저물듯이 인생 안에서 시작된 모든 일과 관계는 끝에 도달합니다. 무수한 시작과 끝의 사이에 이야기들이 쓰이고 추억으로 살아남아 우리의 시간 곁을 맴돌다가 육신과 함께 사멸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유랑 속에서 배움과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던 공자의 삶은 노마드적입니다. 질 들뢰즈는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정의했었지요. 화산려괘와 산화비괘의 이미지와 맥락이 같습니다. 공자가 구현했던 지적 노마드의 세계는 '생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부를 수 있겠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이 내린 운명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굳건히 지키며 바르게 실천했기에 공자의 제자들은 그의 유산을 기꺼이 집대성하여 후대에 남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 없는 여행은 이동移動에 불과하고 생각 없는 인생은 망동妄動에 지나지 않습니다. 괘사에서 소형小亨이라고 했으니 나그네의 삶이란 크게 형통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그네로서의 여정을 바르게 하기만 한다면 길하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여행, 생각하는 인생을 염두에 두고 화산려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