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란 오를 수는 있어도 머무를 수는 없는 곳이다.
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한 음식 냄새에 속이 뒤집히고 있었다. 등반 내내 괜찮던 몸이 마지막 야간 산행을 앞두고 고장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대비한 탓인가, 오전에 먹었던 반알의 고산증약(이뇨제)이 몸을 괴롭혔다. 자정 즈음에 예정된 등반에 대비하기 위해 이른 저녁 침낭 속에 몸을 욱여넣고 잠을 청했는데 이내 손발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팔과 다리로 마비 증세가 전이되었다. 그리하여 손가락과 발가락을 끊임없이 조물락거리느라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층 침대 여섯 세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막사 안에서 우리는 전쟁 중인 병사들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마지막 고지전을 치르기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전투병과 싸움에 나갈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부상병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와중에 식당 노릇까지 겸하는 막사 안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뱃속에 밀어넣거나 차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속 편한 병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의 짧은 식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현지인들의 식사가 이어졌다. 다른 산장과 달리 별도의 식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탓이었다. 우리처럼 몸을 누일 작은 공간조차 갖지 못한 포터와 가이드들이 풍기는 음식 냄새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먹어야 했다. 수없이 올랐을 그 차고 숨막히는 어둠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들어가 우리를 정상까지 안내하기 위해서 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이 먹고 마셔야 했다.
남은 자들의 응원과 오르는 자들의 침묵. 그 순간 세상사는 단 두 가지의 일로 압축된다. 사그라들지 않는 고통 속에서 밤잠을 설치며 오르는 자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일과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린 괴물의 몸을 더듬어가며 해가 떠오를 때까지 걷기를 멈추지 않는 일.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텅 빈 위장 속으로 비아그라 한 알을 던져 넣었다.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고 속은 점점 메스꺼워졌다. 나는 차가운 겨울 공기를 폐 속 가득 집어넣고 싶었다.
누군가는 환영을 보았다고 했다. 흰 자위가 없는 검은 눈동자의 어린 아이가 고비마다 나타나 자신을 향해 빙긋 미소를 건네 주었다고 한다. 킬리만자로에 서 본 적 없는 이들에게는 섬뜩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담담히 그의 말에 공감한다. 생각해보라, 구름 위에서 당신에게 흐뭇한 눈웃음을 짓고 있는 자가 누구겠는가. 나는 아이로 현신한 그가 킬리만자로를 지키는 신선이라고 믿는다. 21세기의 인간은 여전히 무력하다.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는 광대한 우주 끝의 터럭 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킬리만자로는 인간의 정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한없이 작은 인간으로서의 미약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아프리카 땅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일 게다.
추웠다. 눈보라가 날리는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강추위 속에서 여러 겹으로 겹쳐 입은 옷은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은 잘려 나가는 듯 시려 왔고 골이 뽀개지는 듯한 두통과 방독면을 쓰고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는 듯한 호흡곤란은 꿋꿋하게 버티고자 애쓰는 정신의 힘과는 반대 방향으로 육체를 깊은 나락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동료들은 저마다 자기 만의 한계 앞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 사람, 환영에 시달린 사람, 체력의 바닥 앞에서 포기의 유혹으로 갈등한 사람, 뻔히 동사凍死가 예견되는 상황임에도 달콤한 잠의 유인에 걸려들었다 빠져 나오기를 반복한 사람 등 킬리만자로는 우리로 하여금 매 순간 인간의 정신적 한계와 신체적 한계의 경계에서 자기 자신을 적나라하게 대면하도록 강요했다. 나는 아프리카의 지붕 위에 몰아치는 한 겨울의 폭풍 속에서 내 한계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나아갔다. 한 걸음, 내 눈 앞의 오직 한 걸음이 내 인생의 진보요, 내 시대의 진보요, 인간의 진보임을 믿었다. 나는 현재에서 버티기 위해 그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견뎌냈다. 내 몸의 한계는 순간마다 고도를 높히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정상에 섰다.
길만스 포인트(Gilman's Point)에서. 함께 등정한 지식생태학자 영만 형님과 함께.
정상은 진정한 정상이 아니었다.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고 안도했을 때 자유를 뜻하는 단어 '우후루(Uhuru)' 피크까지는 여전히 200여 미터의 높이가 남아 있었다. 나는 동지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투의 끝에서 마침내 함께 해냈다는 뿌듯함과 더 이상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세 시간 여의 추가적인 등반을 멈추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진정한 '자유'를 향한 추가적인 거리는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남겨두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의 삶에서 채워야 할 아름다운 숙제로 꼬옥 품어 두는 것이 우리의 연대가 획득해야 할 더 소중한 가치 하나를 공유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길만(Gilman)스 포인트는 우리 모두의 진정한 정상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더 높은 정신적 고양을 위해 공동의 길을 떠나는 길맨(Gilman)이 되었다. 태양은 하늘에서 이글거렸고 바람은 따뜻했다. 우리는 내려갈 준비가 되었다.
80도의 급경사를 담아낼 눈이 카메라에는 없다. 내려오는 일도 고된 작업이었다.
하산 중에 밤샘 등정의 아득한 기억과 마주하고 있다.
하늘이 가로로 붉게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운해의 끝에서 새날이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달걀 노른자처럼 물컹 솟아오르는 태양의 온기는 그것이 왜 이 땅의 모든 생명의 근원인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위 세 장의 사진은 일행 중 가장 뒤쳐졌던 사람이 올라오면서 촬영한 것이다. 먼저 정상에 도착한 사람들 중 누구도 일출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키보 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극심한 피로를 그대로 끌어안고 호롬보 산장으로 이동하여 수마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하산에 앞서 포터와 가이드들이 축하 공연을 펼쳐주었다. 그들의 흥에 함께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