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자왈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공자가 말했다. "군자에게는 천하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도 없고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도 없다,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처한 사회 환경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주입되어 뇌리에 고착되기 쉽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저마다의 주장들의 핵심은 '내가 옳다, 너희들은 틀렸다'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 그것들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옮음의 이면에 이익이 자리잡고 있음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지요.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모두 득得이 되는 것은 선善, 실失이 되는 것은 악惡으로 인식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많은 일이 앞세운 의義는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그럴듯한 포장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종교가 그렇고 정치가 그러하며 행정, 사법, 경제, 문화, 안보, 외교, 경영, 예술, 스포츠 등 인간 사회의 모든 활동이 그러합니다. 이익을 위해서는 권력을 잡아야 하고 권력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서는 세勢를 불려야 하지요. 주도권을 쥔 세력의 의사에 따라 세상의 각 분야는 제각기 법과 제도를 수립, 운영합니다. 체제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장치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득권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기능하기 마련이지요.
공자의 말을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 적용하면, 진보와 보수 어느 일방도 권력을 독점해야 마땅한 당위성을 갖지 않습니다. 국익 증대와 국민의 행복 증진이라는 목적이 중요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구사 측면에서 진보와 보수는 극단적으로 다르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보수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보수의 가치를 내세운 수구 기득권 집단일 뿐입니다. 역시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나라의 보수에게 의義의 가치는 국민과 국가가 아니라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향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은 그들의 이로움을 위해서만 작동해 왔습니다. 국가조차 이익 창출을 위한 대상으로 삼았던 이력이 있는 자들이기에 다가올 또 한 차례의 경제 위기 상황은 국민에게는 불행, 그들에게는 축복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세계 경제 흐름을 읽는 혜안과 대처 능력을 갖춘 의로운 리더와 참모들이 있을 때 우리는 거대한 위기의 파도를 넘을 가능성을 갖게 되지만, 안타깝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막대한 외환 투여로 올해 하반기 안정을 찾는 듯 보일 환율 시장은 내년의 폭등세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이후 일시적 활황세를 보일 세계 주식시장은 내년 상반기 후반부를 기점으로 폭락세에 접어들 것입니다. 금리는 치솟고 가계는 무너질 것이며 자산 시장은 붕괴할 것입니다. 다시 공포가 나라 안을 채울 것이며, 많은 국민이 고통에 허덕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특히 돈의 움직임은 각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주체들의 의도에 따라 반복적으로 큰 패턴을 형성하게 되지요. 모든 급속한 붕괴의 끝에서는 반드시 엄청난 자금의 유입이 이루어집니다. 영원한 몰락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바닥에서 헐값이 된 실물과 금융 자산 매입을 통해 어떤 이들은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창출하게 됩니다. 지식과 지혜라는 수단과 방법을 갖지 못한 일반 국민들이 그들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요.
군자라면 의로움을 따를 것입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위기의 시대를 현명하게 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군자가 아닌 자들이라면 이로움을 따를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기의 시대를 기회로 활용할 것입니다.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들 것입니다. 언론은 국민 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의로움과 이로움 중에 리더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는 이렇게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간단한 선택 기준을 외면한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은 너무도 뻔하지요. 불의한 불이익,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