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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May 23. 2022

일상의 논어 <이인里仁9>-악의악식惡衣惡食


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자왈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


-공자가 말했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도 해진 옷과 거친 밥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어 논하기에 충분치 않다."



악의악식惡衣惡食은 호의호식好衣好食과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악의악식을 부끄러워하는 선비의 의식 수준이란 보잘것없는 것이지요. 악의악식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정당한 수단과 방법이 아니고서는 결코 부와 명예를 좇지 않은 결과로서의 그것은 부끄러움의 대상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학위를 훈장처럼 활용하면서 정권에 빌붙어 궤변을 일삼았던 수많은 폴리페서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온갖 거짓과 위선, 편법과 위법을 저지르며 호의호식해도 수사조차 받지 않으니 그들은 늘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다니며 권력을 등에 입고 더 해먹으려 공직을 기웃거립니다. 학자의 양심을 운운하며 청렴하고 정의로운 체하지만 그들의 삶에서는 하나같이 악취가 진동하지요.    


사士를 꼭 학자로 국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직에 있는 동안 호의호식을 위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 전념했던 자들이 더 큰 권한을 가진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모습은 다시 일상화되었습니다. 아직 깨어 있지 못한 국민들이 수두룩한 탓이지요.         


공자는 이런 자들과는 말을 섞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의議는 옳을 의(義)와 말씀 언(言)의 결합어이니 이토록 천박한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들과 함께 정의를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의義란 오직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 극대화에 부합하는 가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 노무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추도사가 있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그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웃과 공동체의 아픔에 눈을 뜨면서 호의호식의 길에서 스스로 멀어지기를 택하고 국민이 행복한 '사람 사는 세상'의 바다를 향해 강물처럼 굽이쳐 나아가기를 한시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리더 노무현. 오늘도 그의 정신을 삶 속에 녹여 담담히 실천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으로 일하던 제가 노무현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으로 계속 일하게 되면서 당신을 만나게 된 건 참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당신께서 저에게 하신 큰 말씀, 그것은 지금도 저의 귀에 쟁쟁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2003년 4월말, 평양에서 열릴 제10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앞두고 회담 운영 계획을 대면 보고 하기 위해서 대통령 집무실로 찾아간 저에게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돕는 건 인도주의도 아니고 동포애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놀랬어요. "아니 인도주의도 아니고 동포애도 아니면 뭡니까?"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가 북한을 돕는 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도리, 도리,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우리 남한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 북한 돕기라는 말씀이었죠. 이건 의식 수준이 보통 높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툭하면 퍼주기다, 끌려다니기다 이렇게 말들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 의식 수준이 높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실 수 없는 말씀이 바로 도리론입니다. 이런 높은 의식 수준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만들어 내신 10 4 남북정상선언의 정신은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 오늘도 유효한 가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가야만 할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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