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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ug 28.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7>-속수지례束脩之禮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가 말했다. "스스로 속수지례를 행하는 이상 나는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속수'는 육포 묶음으로 스승을 처음 뵐 때 드리는 소박한 예물을 뜻합니다. 이것을 '속수지례'라고 합니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위령공> 편 38장의 '유교무류有敎無類 -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와 맥락이 동일합니다. 즉 공자는 배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성인 '속수지례'를 둔 것은 배우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업료를 치렀으니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배우라는 것이지요.


인플레이션 시대의 그늘은 대학등록금에도 슬그머니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반값 등록금을 부르짖어 대권을 쥐었던 자가 있었다는 기억도 강산의 변신 속에서 망각된 지라, 등록금 인상 앞에 인플레이션과 규제 완화를 들이댔으니 학비가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물가와 연동시키면 매년 상승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고학생들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공부할 시간을 알바로 채워야 하지요. 제대로 된 학업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심적 고통 속에서 꿈을 낮추거나 접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 공동체를 생각하기 보다 자기 자신 안으로 침잠되기 마련이지요. 사고의 크기가 줄어든 사회인을 양성하는 기관을 대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1,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고 사실상 유럽의 패권국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통렬한 반성과 의지로 과거사를 청산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운 것이 독일 발전의 두 축 중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대학 무상 교육입니다. 국가의 미래를 담당하는 젊은이들에게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라고 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입니다. 아울러 공부하는 국민은 어떤 식으로든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신뢰에 기반한 정책입니다. 배움에 나이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배움을 가까이하는 지성인이 넘칠수록 국가의 근간은 단단해지기 마련이라는 통찰이 있기에 가능한 정책입니다. 독일이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생활비까지 지급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직장에 들어가 독일로 출장을 다니며 그 시절 독일 유학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고 알바로 점철된 우울한 나날을 보냈던 그 시절의 저의 아둔함에 씁쓸해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민족의 반역자들을 처단하기는커녕 그들에게 부와 권력을 쥐어 준 미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죽고 그들의 후손들은 평생 가난에 시달렸으며, 이런 부조리는 국민들로 하여금 암암리에 정치에 대한 불신과 기회주의적 가치관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지요. 엘리트 카르텔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여 국민들을 세뇌하고 등쳐먹어 온 치욕의 역사 속에서도 끝내 민주주의를 이루고 정의를 회복한 것은 위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국민들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끼고 진실을 마주하고자 노력하여 깨우친 이들로 거듭난 후 모순을 구조적으로 양산해 온 파렴치한 권력자들에게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위대한 국민들 덕분에 이 나라는 세계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친일의 더러운 그림자가 사회 전 영역을 뒤엎고 있고 평화는 멀어지고 있으며 사대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위대한 국민들이 목숨을 던져 나라를 만들어 온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어리석은 국민들의 무지에 힘입어 매국노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습니다. 국가는 다시 탐욕스러운 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위대한 국민들은 횃불을 들고 일어나 이 나라를 다시 구하겠지요. 하지만 이 악순환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끝내야 합니다. 정권을 되찾아 오면 '배움에 차별을 두지 않는' 대학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불의에 침묵하는 대학, 권력에 굴종하는 대학은 죽어야 합니다. 학비 걱정에서 해방된 대학생들이 당당하게 진리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열린 대학 안으로 들어가 젊은이들과 어우러져 지성을 높이고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대 간의 갈등은 그 시간 속에서 치유되기 마련입니다. 


K컬처가 세계의 대중을 사로잡고 있지만 그것은 정작 우리 자신의 정신을 고양시키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우리는 국민을 믿고 지원하는 정부를 재창출해야 합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계적인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들이 배출된 독일의 토양을 우리도 일궈 내야 합니다. 우리도 대학 교육의 장벽을 걷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의식이 없는 불의한 세력에게 휘둘리는 나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위대한 국민들의 나라를 열어 갈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은 반드시 단죄되고 그들에게 기생했던 자들은 양지에 얼굴을 디밀 수 없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진정 위대한 나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대학 무상 교육의 길을 열면 대학은 개혁됩니다. 대학의 판이 뒤집어질 때 대학교 입학을 향해 집중된 무식한 초중고 공교육이 정상화 되고 사교육 시장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이 장기적인 토대의 구축을 시작하고 그 위에서 언론 개혁, 사법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할 때 이 나라는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 쓰레기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위대한 국민들의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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